푸틴, 신냉전의 방아쇠를 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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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러 제재로 철수 앞둔 이케아 매장 몰린 러시아인들<로이터>

러시아 침공에 놀란 나토국, 국방비 예산 늘리며 대응
대규모 서방 제재로 동서 경제 전쟁은 이미 시작돼

예상을 깨고 지난달 24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명령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전을 개시하면서 ‘신냉전’ 시대의 서막이 올랐다.

러시아의 무력 침공에 놀란 유럽은 군비를 증강하기 시작했고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대대적인 제재는 이미 경제 전쟁에 돌입했다.

우크라이나 주변에는 서방의 무기와 병력이 속속 배치돼 서방과 러시아가 ‘3차 세계대전’을 벌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위태로운 국면이다.

서방의 제재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는 것은 물론 우크라이나 최서부 폴란드 국경 근처까지 미사일을 발사하며 나토를 긴장시키고 있다.

러시아는 중국이나 인도 등 서방의 제재에 참여하지 않는 국가들을 통해 숨통을 트면서 중국과 반서방 체제를 구축하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 러,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잠들었던 유럽 깨워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냉전이 종식한 이후 나토는 동유럽권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도 군비 증강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나토 회원국은 2014년 ‘국내총생산(GDP)의 2%로 국방비 확대’를 약속했지만 이를 지킨 나라는 미국과 영국 등 몇 나라 되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놀란 유럽은 서둘러 군비 증강에 돌입했다.

소련의 팽창주의와 군사적 위협에 맞서 창설됐던 나토는 소련 해체 후 동력을 잃어갔지만 러시아라는 잊힌 적국이 다시 등장하면서 잠에서 깨어나는 상황이다.

독일의 변화는 가장 극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은 군비 증강에 가장 소홀했고, 서유럽권에서 러시아와 유대관계가 가장 깊었기 때문이다.

올해 1천억 유로(약 134조 2천억원)의 추가 국방기금을 조성하고 2024년까지 현재 GDP 대비 1.5% 수준인 국방비도 2% 이상으로 끌어 올리기로 했다.

2021년 독일의 국방예산은 470억 유로(약 63조원)였다.

이탈리아는 GDP 대비 1.37% 수준인 국방비를 2024년까지 2%로 증액하기로 했으며 폴란드와 덴마크 등도 국방비 증액을 추진하고 있다.

나토의 동부 최전선인 동유럽 국가들은 더 급하다. 인접한 우크라이나가 공격받는 것을 보며 전쟁을 가장 체감하는 탓이다. 이들은 러시아의 공습과 미사일 공격을 막기 위한 첨단 방공체계 구축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 또 다른 신냉전의 축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과 일본, 한국, 호주 등 인도·태평양 국가들도 군비경쟁에 나선 상태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군비 증가 흐름이 전면적인 군비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 경제 전쟁은 이미 시작···철의 장막에 갇힌 러시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자마자 서방은 준비했던 대대적인 제재를 가동했다.

러시아 주요 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퇴출했고 무역 관계에서 러시아의 최혜국 지위를 박탈하는 등 전략 물자 금수 조치를 통해 러시아 옥죄기에 돌입했다.

러시아 에너지의 의존도가 높은 유럽은 제재에 소극적일 것으로 전망했지만 2027년까지 ‘에너지 독립’을 선언하고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등 미국에 발맞추고 있다.

서방의 다국적 기업들도 줄줄이 러시아에서 사업을 철수했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제재에 동참하는 지 여부로 국제사회를 둘로 갈라졌다.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은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이 됐다.

한국과 일본은 제재에 참여했지만 반미 진영의 대표주자인 중국은 러시아에 기우는 모양세다.

러시아는 중국과 반서방 전선을 구축하며 중국으로 석유 수출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인도도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채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시작했다. 미국의 전통 맹방에서 벗어나 독자력을 가지려는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고 러시아와 군사·경제 관계가 밀접한 이스라엘은 중재자를 자처했다.

사우디의 석유 거래 대금 위안화 결제 검토설까지 나왔고 UAE는 러시아와 안보 협력을 추진 중이다. 서방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중국이나 제3국을 통해 제재의 우회로를 찾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 중국, 러시아 편에 설까…美 중국에 ‘2차 제재’ 압박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중 갈등까지 번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영상통화에서 중국이 러시아를 물질적으로 지원하면 ‘후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과 유럽이 함께 러시아의 ‘돈줄’을 말리는 상황에서 작년 기준 러시아와 약 178조 원 상당의 교역을 한 중국이 ‘숨구멍’을 만들어 주지 않도록 하는데 미국의 외교력이 모아지고 있다.

또 근래 러시아와의 연합훈련을 통해 군사 공조의 수준을 높여온 중국이 러시아에 군사 지원을 하면 우크라이나의 끈질긴 저항으로 간신히 유지하는 전황의 균형이 급속히 무너질 수 있다는 게 미국의 판단으로 보인다.

외교가에서는 러시아와 거래하는 중국 기업은 미국과 거래할 수 없도록 하고, 미국 주도의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식의 ‘2차 제재’를 미국이 구상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현단계에서 미국은 구상중인 대 중국 제재가 무엇인지, 자신들이 생각하는 중러관계의 ‘레드라인’이 무엇인지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중국에 스스로 대러시아 지원의 ‘한계’를 설정하도록 압박하는 양상이다.

매튜 포팅어 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현 상황과 관련 WSJ에 “상상 속 냉전이 현실화한 1950년 한국 전쟁에서는 스탈린이 지원하고 마오쩌둥이 군대를 보냈다면 이번에는 시진핑이 스탈린 역할을, 푸틴이 마오쩌둥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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