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튼식 시동 차량 노려
▶ 리모트키 신호 원격조정
▶ 해킹 등 신종수법 기승
▶ 1~2분만에 차량 사라져
남가주 전역에서 첨단 기술을 악용한 차량 절도가 급증하며 경찰이 강력한 경고를 내놓고 있다. 최근 애나하임힐스와 레익포레스트 등지에서는 고급 SUV와 트럭을 대상으로, 무선신호 증폭 장비와 차량 해킹 장비를 이용해 불과 몇 초 만에 차를 훔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고 LA 타임스 등이 일제히 보도했다. 경찰은 이러한 수법이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라 “가파르게 퍼지고 있는 새로운 범죄 트렌드”라고 강조하고 있어 한인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지난달 12일 애나하임힐스의 한 가정집에서 벌어진 차량 절도 사건은 그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피해자는 실내에 있던 리모트키 신호가 범죄자의 장비에 잡혀 순식간에 차량이 도난당했다고 KTLA에 밝혔다. 보안카메라 영상 속 범인은 집 문 앞까지 접근해 안테나 모양의 장치를 머리 위로 들고 신호를 포착한 뒤 마치 정품 키를 가진 것처럼 차량을 시동 걸고 그대로 달아났다. 피해자는 “자동차 열쇠가 부엌 안쪽에 있었는데 누가 안테나 하나로 차를 훔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냐”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며칠 뒤 레익포레스트에서도 유사한 범행이 발생했다. 애나하임 경찰은 같은 주말 동안 최소 두 건 이상의 동일한 패턴을 확인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릴레이 공격’으로 분석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키리스 엔트리(keyless entry) 차량의 약점을 노린 방식으로, 범인이 실내에 있는 차량 키의 미약한 신호를 증폭해 차량까지 전달함으로써 문을 열고 시동까지 거는 수법이다.
또 다른 방식은 차량 내부 컴퓨터 시스템을 직접 해킹하는 수법이다. NBC LA 보도에 따르면 범인들은 먼저 차량 유리를 조용하게 파손한 뒤, 합법적인 자동차 정비 도구인 열쇠수리용 태블릿을 차량의 진단용 컴퓨터 단자(OBD 포트)에 연결해 새로운 키를 프로그래밍한다. 이 과정은 전문가처럼 능숙하게 진행되며, 전체 범행은 1~2분 안에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찰은 “이 장비가 원래 정비업자와 락스미스가 쓰는 기기라는 점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문을 잠그는 것만으로는 최신 차량을 완전히 보호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고 지적한다. 경찰 측은 “키를 현관 근처에 두지 말고, 가능하다면 버튼을 누를 필요 없는 패시브 키리스(passive keyless) 기능을 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한 전자기 신호를 차단하는 파라데이 백(faraday bag)이나 금속 재질의 보관함을 활용하면 릴레이 공격을 상당 부분 차단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이밖에 차량을 야외가 아닌 차고에 보관하고, ‘클럽’으로 불리는 별도의 핸들 잠금장치를 사용하는 것 역시 유효한 방어책으로 꼽힌다.
경찰은 이같은 신종 절도 수법이 빠르게 확산되는 만큼 지역 주민들의 영상 제보가 범인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애나하임 시는 최근 웹사이트(ConnectAnaheim.org)를 통해 주민들이 CCTV 영상을 손쉽게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전문가들은 운전자들이 ‘기술 보안’을 생활 습관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기존 물리적 잠금 장치뿐 아니라 무선 신호 관리,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등 디지털 보안 역시 필수 요소가 됐다고 조언했다.
<노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