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사랑한 선교사 이야기 36] 엘렌 홉스(Beatrice Ellen Pugh Hob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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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문 목사(시카고나눔교회 담임)

엘렌 P. 홉스( Beatrice Ellen Pugh,Hobbs) 는 1880년 8월24일 영국 구세군 가정에서 출생하여 구세군 사관학교 출신 토마스 홉스( Thomas Hobbs )를  만나 결혼 하였다.  부부는 선교의  꿈을 품고 1910년 9월 16일 남편과  함께 구세군 간호 선교사로 내한 하였다. 남편 토마스 홉스는 구세군 한국 본영에  파송받아  교회 개척과  순회 전도를  집중 하면서 문맹퇴치, 사회 개몽  활동을  전개 하였다.

엘렌 홉스는  주로 남편 사역에  함께 참여 하다가  1913년 선교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파송받은 구세군을 떠나  영국 성서 공회로 옮기게 된다.  당시 영국 성서  공회는  한국어를  잘하고 한국인 권서와 함께  일한 경험 있는자가 필요했다.  성서 공회와  관련된 밀러와 (Hugh Miller) 저다인 (Jerdine)은  엘렌 부부를 성서 공회에 추천하여 부총무로 부임하게  된것이다.  그후  총무로 맡고있는 밀러가 은퇴한 후    25년간 경륜을  쌓은 토마스 홉스가 제3대 성서공회  후임 총무직을 맡게 된다.

토마스 홉스는 밀러가 추진하던  개역성경 번역 작업을 성실하게  마무리한 구약을 합본하여 <성경 개역>으로 출간하는 등 성서 출판과  보급에  크게  공헌 하였다.  엘렌홉스는 남편 사업을 지원 하면서  별도로 자신의 사역을  성실하게 개척해 나갔다. 특히  기독교  부인 절제  연합 활동은  술, 담배, 판매금지, 금연, 금주 운동이 대표적 사례 활동이다.   금주 운동이 일어난 것은  감리교에서  이미 1894년부터  금주 정책을  세워서 금주(禁酒)를 공식적으로 결의 한바가 있다. 한국 교회에서 금주, 금연 운동이  조직화 된 것은  1900년대 이후인데  특히 절제운동(節制運動)을 통해 보다 구체화  되었다.  1907 년 이후에는 금주, 금연으로 절약한 재화로 외채 청산에 기여하자는 민족적 동기도 있었다.  ‘기독교 절제회’가   점차 전국적으로 확대  되면서 금연으로 절약한  돈을  모아 외지에 전도인을  파송하는 전도 운동을 겸 하기도 했다.

1935년 2월 10일은 금주(禁酒)의 날로 선포 되었고, 이때를 전후하여 조선 기독교 여자 절제회와 조선 예수교 연합 공의회 등이  주최하는 금주 가두 행렬, 금주 강연회 등이 전개 되었다.  특히 담배는 조선 초기에는 담배가 약초로서 인식되어 “병든 사람이  피우면 좋다” 라든지 “술을 깨게 한다”든지 혹은 “소화를 잘 되게 한다”는 소문으로 담배는 빠르게 전파되어  피우는 사람이  많아지고  농가에서  재배하는 필수적인 농경 작물이  되었다.  담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초보다는 기호품으로 애용 되었고,  양반만이  아니라 위로는 대신으로부터 아래로는 평민은 물론 천민까지 확대 되었다.

엘렌는 지나친 음주와  흡연 문화를 계몽 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외에도  사경회  강사와 동물 학대 방지협회 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 하였으며 현장 교사로, 교육 문화에도 힘썼다. 그러나 모든일에 열정적인 엘렌은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아 영국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서울로 다시 돌아 왔지만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1934년 4월 8일 서울에서 별세하게 되었다.  엘렌는 22년간  남편 홉스를 내조하면서  평생을  섬김과  봉사의 길을 걷다가  52세의 나이로  아름다운 생을  마감한  헌신의 삶은 길이 남을 것이다.(참고문헌: 대한성서공회사, 양화진의 선교사들의 삶과 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