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선교적 교회에 대한 오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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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목사(다솜교회 담임)

교회 성장운동, 구도자 운동, 건강한 교회 운동, 이머징 교회 운동… 이런 단어들을 기독교인이라면 다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 중에 구도자 운동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윌로우 크릭 교회에서 시작해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운동이니 시카고에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seeker’s service 또는 구도자를 위한 예배에 대하여 들어보거나 참여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실 20세기에 나타났던 이러한 교회 운동들은 모두 선교적인 이유에서 출발하였다. 교회 성장운동은 인도 선교사였던 도널드 멕가브란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는 성경에 나타난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면 교회 성장이라는 결과가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또한 선교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동일 집단의 원리, 하나님의 다리와 같은 선교 신학 이론을 발전 시켜, 질적이며 양적인 교회 성장을 도모하였다.

구도자 운동은 기독교 문화에 낯선 불신자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세속적인 문화를 예배의 도구로 접목하고자 했던 운동이다. 한국에서는 열린 예배라는 이름으로 구도자 운동이 소개되었다.

이머징 교회 운동은 구도자 운동에도 무관심한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소위 Z 세대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방편으로 탄생하였다. 이머징 교회 운동은 전통적 교회에 들어오지 않는 Z 세대를 복음화하려는 목적으로 전혀 새로운 모습의 교회, 전혀 다른 예배, 그리고 체험적 신앙을 도모한다.

선교적 교회 운동도 선교적인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 선교적 교회 운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레슬리 뉴비긴은 영국 사람으로 인도에서 평생을 선교하였다. 38년간 남인도에서의 선교 활동을 마치고 고향 영국으로 돌아온 뉴비긴은 영국의 달라진 현실에 깜짝 놀라게 된다. 영국이 더는 자신을 인도로 파송하였을 때의 영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완전히 세속화되어 버린 영국과 서구 사회를 선교적인 입장에서 재조명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서구 교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교회의 행정이나 조직을 바꾸는 일이나, 어떤 전략을 수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에 있다는 생각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이처럼 선교적 교회 운동도 다른 교회 갱신운동처럼 선교적 이유에서 출발했지만, 선교적 교회는 더 효과적인 전도나, 선교나, 성장을 위한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다. 선교적 교회 운동은 교회의 본질을 주목하고, 그 본질을 회복하고자 한다. 선교적 교회론이 찾은 교회의 본질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기인한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성부와 성자 하나님께서 성령 하나님을 보내신 것처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세상에 교회를 보내신다는 것이다. 즉 교회의 본질은 세상에 보냄을 받은 존재라는데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그 교회가 있는 지역사회에 보내셨으며, 하나님께서 교회를 보내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교회는 교회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지역사회에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예배를 잘 드리고, 교육을 잘하고, 친교가 좋고, 그래서 성장하는 교회라고 해도 그 지역사회에서 있으나 마나 한 교회, 있는지조차 아는 이가 없는 교회, 더 나아가 세상으로부터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는 교회는 교회의 본질이 심각하게 훼손된 교회라 할 수 있다. 시카고 지역이라는 세상에 보냄을 받은 교회로서, 우리 한인교회들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변화되어야 할까? 우리 모든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이 시카고 랜드 (Chicago land)에서 크게 영광 받으시는 날을 사모하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