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두표(시카고 문인회 회원)
입에는 꿀을 바르고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다는 뜻으로, 즉 겉으로는 꿀맛같이 친한 척 하지만 내심으로는 음해(陰害)할 생각을 하거나, 돌아서서 헐뜯는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사람, 마치 꿀벌이 입에는 꿀을 머금고 있지만 공격용 침을 배에 가지고 있는 것의 비유 입니다. 이 말은 옛날 송(宋)나라학자인 <사마광>(司馬光)(1019- 1086)의 저서인 자치통감(資治通鑑)에 나오는 고사성어로, 당(唐)나라 현종(玄宗)(당나라 6대왕 685- 762) 때 <이임보>(李林甫)라는 간신(奸臣)은 환관(宦官)에게 뇌물을 바친 인연으로 왕비인 <양귀비>(楊貴妃;양꿰이훼이)(719- 756 38세로 자결)에 들러붙어 황제의 환심을 사 출세하여 재상(宰相)이 되었는데, 그 후 황제의 비위만을 맞추면서 다른 신하의 충언(忠言)이나 백성의 간언(諫言)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서 국정을 농단(壟斷)하였습니다. <사마광>은 자치통감을 편찬하면서, 이런 <이임보>의 작태를 ‘입에는 꿀이 있고, 뱃속에는 칼이 있다. 라고 평하였는데 원문은 口有蜜, 腹有劍(구유밀 이나 복유검 이라.)에서 4자를 따온 것입니다. 자치통감은 주(周)나라 위열왕(威烈王)에서 후주(後周) 현덕왕(顯德王) 때 까지 1362년간의 통사(通史)로 송(宋)나라 영종(英宗)의 명으로 19년에 걸쳐 만든 사서(史書)입니다. 그중에 증선지(曾先之)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고사인데, 오직 황제와 양귀비의 비위만을 맞추면서 정적(政敵)은 무슨 죄목이든 붙여서 가차 없이 숙청(肅淸)했는데, 그중에 조정의 대신인 <엄정지>(嚴廷之)가 자기를 따르지 않고, 직언을 한다고, 외직인 어느 지방의 자사(刺史;감찰관)로 강등 시켜 버렸습니다. 얼마 후 황제가 대신이었던 그가 재능이 출중했으므로 조정(朝廷)에 다시 중용코자 하자, 이임보는 재빨리 그에게 병을 핑계로 경성(수도)에 치료하러 오라고 사주(使嗾)하고는 황제에게 보고하기를, ‘정말 아까운 사람인데, 애석하게 되었습니다. <엄정지>가 지금 중병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조정 대사를 볼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일이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고 상심한 듯 아뢰자 황제도 탄식하며 그를 내직(內職)으로 승진 시키려던 마음을 접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국정을 농단(壟斷)하기도 하였는데, 이를 보다 분노를 느낀 <안녹산>(安祿山)(?- 757년 아들이 살해)은 마침 양귀비의 4촌 오빠인 <양국충>(楊國忠)을 황제는 특별히 ‘국충’(國忠)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고, 어사(御史)에서 재상(宰相) 까지 됐는데, 그는 국사를 돌보기보다도 음종불법(淫縱不法)으로 권력을 휘두르며 지내, 안녹산 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황제는 오로지 <양귀비>만을 극도로 총애(寵愛)하여 그의 가족, 친지들까지도 모두 후대(厚待)를 하여 국정(國政)이 혼란한 틈을 타 안녹산은 <사사명>(史思明)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황제는 몰래 촉(蜀)나라로 도망치고 <양귀비>는 종사(從士)들의 압력으로 마외파(馬嵬坡)에서 목매어 죽었다. <안녹산>은 한때 반란이 성공하여 낙양(洛陽)에서 대연황제(大燕皇帝)라 칭하였으나, 그의 애첩 단씨(段氏)와 아들 경은(慶恩)만 편애하다가 다른 아들 경서(慶緖)에게 살해당하고, 이를 보고 있던 <사사명>은 또 <경서>를 죽이고 왕이 되었으나, 이번에는 그의 아들 조의(朝義)에게 피살되는 ‘구밀복검’하는 자들의 말로(末路)를 연속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