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풀이] 螢雪之功(형설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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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두표(시카고 문인회)

갖은 고생을 하며, 수학(修學)함. 또는 고생을 하면서 꾸준히 공부하여 얻은 보람을 말 하는 것으로 ‘螢’(형)이란 원래 ‘熒’(등불 형)에서 온 것으로 ‘火’(불)이 겹쳐(활활)타고 있는데 ‘冖’(덮게) 밑에 또 ‘火’(불)이 타고 있는 형상으로 불이 활활 타며 밝게 빛나고 있음을 나타내는 글자인데, 이 글자에 벌레로서 밝은 빛을 내는 모양을 아래의 ‘火’를 생략하고 ‘虫’자를 합하여 ‘빛을 발하는 곤충’(반딧불)이라는 뜻의 ‘螢’(반딧불 형)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형설’(螢雪)이란 하나의 얘기가 아니고, 형광(螢光) 과 설광(雪光)의 2가지의 뜻이 합해진 글자입니다. 그러면 이 말의 유래를 살펴보면, 형(螢)은 옛날 중국의 진(晋)나라(B.C 859 – 376) 때 <차윤>(車胤)(B.C ? – 401)이라는 학자가 자(字)는 무자(武子)로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등잔에 넣을 기름을 얻을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여름날밤 성긴 베자루에 ‘반딧불이’를 수십 마리 잡아넣어 그 반짝이는 불빛으로 밤 깊은 줄 모르고 책을 읽어 성공했다는 이야기로 박학(博學)하기로 당세에 이름이 높았고 효무제(孝武帝)때 국자박사(國子博士)가 되었는데, 이 벼슬은 고관(高官)들의 자제를 가르치던 학교의 최고책임자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반딧불’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현대 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로 형설지공(螢雪之功)의 고사(故事)처럼 ‘반딧불이’의 빛으로 책을 읽으려면 과연 얼마나 많은 반딧불이가 필요할까? 한 마리가 내는 빛의 밝기는 달빛의 밝기(1룩스)의 3배 수준인 약 3룩스로 1룩스는 1미터 거리에서 촟 불 한 개가 내는 밝기를 나타내는 단위라고 하며, 반딧불이 80 마리를 한데 모으면 고사(故事)에 나오는 <차윤>처럼 한 페이지에 20자 정도 인쇄된 옛날 천자문을 읽을 수 있는 수준이고, 200마리 이상 되면 우리가 보는 신문도 읽을 수 있는 밝기가 된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雪’(설)은 마찬가지로 진(晋)나라 때 <손강>(孫康)이라는 학자로 섬서(陝西) 사람이 있었는데, 역시 집안이 가난하여 등잔의 기름을 사지 못하고, 겨울밤에 들창을 열어 눈빛(雪光)으로 면학하였다는 이야기로 ‘손강영설’(孫康映雪)이라고 따로 말하기도 합니다. 후에 벼슬이 어사대부(御使大夫)가 되었는데, 왕명을 받아 지방에 파견 나가 특별한 사명을 완수하는 어사직(御使職)의 으뜸 벼슬입니다. 이처럼 집안이 가난하여 등불을 켤 수 없었기에 갖은 고생을 참아가며 열심히 공부하여 성공한 두 사람을 꼽아 ‘형설지공’(螢雪之功)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공자(孔子)는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살아온 요즘 말로 ‘흙 수저’ 출신입니다. <공자>는 ‘吾少也賤, 故多能鄙事’(오소야천 하니 고다능비사 라.) 즉 저는 어려서 천(賤)했으므로, 잡일에 능통 했다.고 했습니다. ‘비사’(鄙事)란 천하고 더러운 허드렛일이란 뜻입니다. 그러면서도 논어(論語) 술이(述而)편

18번에서 ‘發憤忘食, 樂以忘憂.’(발분망식 하며, 낙이망우 하야.) 즉 학문에 발분(힘을 돋우어 일으킴.)하면, 밥 먹는 것도 잊고 학문하는 즐거움에 걱정을 잊는다. 고 했습니다. 또 ‘我非生而知之者, 好古, 敏以求之者也.’(아비생이지지자 라, 호고 하니, 민이구지자야 로다.) 즉 나는 나면서부터 저절로 잘 아는 사람은 아니다. 옛것을 좋아하며, 부지런히 찾아 배워 알게 된 사람이다. 고 했습니다. 좋은 책을 많이 읽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