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을 위해 희생하는 예수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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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수목사

강민수 목사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8)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참된 화평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예수님의 세가지 겸손의 모습을 조명하면서 남을 먼저 생각하는 예수님의 마음, 남을 섬기는 예수님의 마음에 이어 세번째로 ‘남을 위해 희생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갖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얼마전 브라질에서 열린 종교축제에 관한 기사에 손으로 만든 십자가들을 싼 값에 판다면서 ‘Cheap Crosses’ (싸구려 십자가)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장사를 하는 가게의 사진을 보면서 이 것이 많은 사람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간판이 아닌가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비싼 값을 지불할 필요가 없는 십자가만 지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섬김의 삶을 산다면서도 내가 기쁘고 만족스러울때는 잘 섬기지만 그 섬김이 나에게 고통과 부담을 주는 짐이 되면 그 것을 내려 놓고 희생이 없는 섬김, 또 아픔이 없는 사랑만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섬김의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늘 영광을 뒤로 하고 낮고 천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류를 대표하여 죄 값을 치루실 수 있도록 기저귀 찬 갓난아이로 시작하여 33년간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그리곤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온전한 화평을 이루시기 위해 자기비하의 극치인 십자가 죽음의 고통과 수치까지 짊어 지셨습니다. 십자가 처형이란 로마인들에게는 비천한 죽음이었고 유대인들에겐 저주의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인도 로마인은 십자가 처형을 당하지 않았고 오직 노예들과 이방인들에게만 행해졌던 수치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에게는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이 하나님의 저주로 받아 들여졌기 때문에 모두가 거리끼는 형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그 십자가의 희생을 스스로 선택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만약 누가 제게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희생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왜냐면 참 사랑은 끝없는 희생의 열매를 생산해 내기 때문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이 우리에게 와서 도움을 청하면 단돈 $1도 아깝게 여겨지지만 사랑하는 자녀에게 절실한 도움이 필요할 때는 전 재산을 소모하는 희생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녀를 한 없이 소중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죠. 이와 같이 우리가 어느 누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 원하면 내가 그 사람을 위해 얼마만큼의 희생을 감수할 뜻이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그 답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가장 고통스런 십자가의 희생을 기쁨으로 감수하셨다는 것은 얼마나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게 된 우리는 이제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과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희생의 십자가를 지고 그가 가신 길을 걸어감으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 참된 화평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남을 위해 희생하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십자가를 짊어 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