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두표/시카고문인회
좀도둑은 잡혀 구속되고, 큰 도둑은 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제후가 된다. 즉 좀도둑은 법을 어겼다고 옥(獄)살이를 하고 큰 도둑은 크게 출세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無爲’(무위)란, 인위(人爲)를 가하지 않고(구속 되지 않고) 그대로 놔둔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장자(莊子)의 잡편(雜篇) 8번 ‘도척(盜跖)의 어록’ 중 지난 칼럼, 무치자부(無恥者富)에 이어지는 장자의 큰 도둑을 처벌하라는 세상을 향한 외침의 말입니다. 하루살이는 거미의 밥이 되지만, 날 새는 거미집을 뭉개버린다. 예로부터 법(法)이란 거미집 같다고 했다. 약한 곳에선 법이 힘을 쓰고 강한 곳에선 맥을 쓰지 못한다. 남의 것을 훔치다 붙들려온 도둑치고 온 세상이 도둑인데 왜 나만 붙들려 왔느냐고 저주를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재수가 없어서, 아니면 운이 없어서 붙들려 왔을 뿐, 이 세상에 도둑 아닌 놈이 어디 있느냐는 속마음을 도둑들은 버리지 못한다. 왜 좀도둑만 잡아들이고 큰 도둑(大盜)는 내 버려두느냐고 항변한다. 그러나 법(法)은 그러한 항변을 접수할 수가 없다. 법은 법을 어긴 놈이 누구냐(?)를 따질 뿐, 법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놈(?)에겐 힘이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좀도둑은 법을 어겼다고 옥(獄)살이를 하고
큰 도둑은 오히려 그 법을 이용해서 치부(致富)를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나라를 통째로 훔치는 짓을,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런 일은 무시로 일어나고 있다. 큰 도둑은 훔친 업적(?)에 따라 오히려 후한 평가를 받고 잔 도둑은 훔친 액수로 옥살이를 합니다. 큰 것은 강(强)하고 작으면 약(弱)한 것이요, 물욕(物慾)이 곧 도심(盜心)이다. 서민들은 허탈감에 빠져 울고 있습니다. 제발 법이여! 큰 도둑을 처벌하라.! 정녕 서민들이 웃음을 되찾는 태평성대(太平聖代)는 한낱 헛된 꿈인가? 아무리 좀도둑을 족쳐도 세상은 무섭다고 합니다. 큰 도둑이 마구 횡포(橫暴)를 부리는 까닭입니다.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 14번에서 공자(孔子)는 군자(통치자)는 도(道)를 쫓아 바르게 행동하라며, 말하기를 ‘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군자 는 식무구포 하고, 거무구안 하며, 민어사이신어언 이요,취유도이정언 이면 가위호학야이 니라.) 즉 군자(君子)는 배불리 먹기를 구하지 않고, 편히 있기를 구하지 않으며, 일에는 민첩(敏捷)하고, 말은 신중(愼重)하며, 도(道)를 쫓아 바르게 고치면,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라는 말입니다. 군자(통치자)는 자기 한 몸의 안락(安樂)만을 앞세우지 말고, 천하만백성(天下萬百姓)의 평화, 안락, 행복(幸福)을 앞세워야 합니다. 특히 앞날이 구만리 같은 젊은 세대들을 보듬어야 합니다. 인생 출발선에 막 들어선 젊은 인생주자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기득권층은 곧 물러날 때가옵니다. 그러므로 정치에 참여하되 인도(仁道)를 실천하고 인(仁)이라는 절대선(絶對善)의 세계를 구현(具現)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서민, 청년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고 가정을 돌보며 안정된 삶속에서 행복을 추구(追求)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공자는 철저한 실천주의자로서 군자는 말(言)보다 민첩한 행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거짓말과 위선이 가득한 미사여구(美辭麗句)의 만 마디 헛소리 보다 과묵하지만 강직(剛直), 과감(果敢), 질박(質朴), 과묵한 지도자를 갈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