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두표/시카고문인회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하다. 라는 뜻으로, 백성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통치자(지도자)의 자세를 비유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맹자(孟子)의 양혜왕(梁惠王) 하(下)편에서 ‘즐거움은 백성과 함께.’ 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 했습니다. ‘獨樂樂, 與人樂樂, 孰樂?. 不若與人, 與少樂樂, 與衆樂樂, 孰樂?’(독락락, 여인락락, 숙락?. 불약여인, 여소락락, 여중락락, 숙락?) 즉, 혼자 즐기는 것은 다른 여러 사람들과 즐기는 것보다 못합니다. 라며, 몇몇 사람들과 음악을 즐기는 것과 많은 사람이 함께 음악을 즐기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즐겁겠습니까? 하면서 왕(王)께서 백성들과 즐거움을 같이 함께하시는 것, 즉 여민동락(與民同樂)을 한다면, 통일된 천하의 왕이 될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맹자는 앞에서 얘기 했듯이 본문에는 ‘여인락락’(與人樂樂)이라고 했는데, 후세에 이를 여민동락, 또는 여민해락(與民偕樂)이라는 단어로 바뀌었으며, 이와 비슷한 다른 표현들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앞에 글자 중 ‘與’(더불어 여)는 臼(절구)와 牙(어금니)와 廾(양손)의 합자로 ‘절굿공이를 둘이서 함께 두 손으로 찧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함께 힘을 모은다는 뜻입니다. ‘樂’(즐거울 락)은 幺(어릴요x 2)와 白(햇빛)과 木(나무)의 합자로, 어린아이들이 나무위에 올라가 햇빛을 쳐다보며 놀고 있는 모습으로 즐겁다는 뜻입니다. 맹자는 주(周)나라 문 왕(文王)을 여민동락을 실천한 대표적 인물로 꼽았는데, 왕의 소유인 동산(東山)이 사방 70여리나 되는 큰 산이었는데, 백성들은 오히려 그것이 작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齊)나라 선왕(宣王)은 자신의 동산이 사방 40여리 밖에 되지 않는데, 그것을 너무 크다고 한다며 억울하다고 맹자에게 호소를 하자, 그런 말이 나오게 된 이유를 말하기를, 문왕의 동산은 사방 70리가 되지만 백성들이 그곳을 마음대로 들어가 풀이나 나무도 베어가고 토끼나 꿩도 잡아갈 수 있습니다. 백성들과 함께 나눴으니 백성들이 작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처음 제나라의 국경에 도착해서 이 나라의 금기(禁忌)사항이 무엇인지 물어본 후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들으니 관문 안에 사방 40리가 되는 동산이 있는데, 그 동산에서 사슴을 죽이는 자를 살인죄와 동급으로 다스린다고하는데 이는 나라 안에 40리가 되는 함정을 파놓은 것과 같으니, 백성들이 크다고 여기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맹자는 이러한 여민동락(與民同樂)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 이상정치(理想政治) 실현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웃의 고통과 슬픔에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은 심보가 아주 고약한자입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 이순신(李舜臣)장군(1545-1598 54세로 전사)은 도(道)라는 것은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하나가되어, 가히 함께 죽고 살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 백성들이 의심하지 않고 따르는 것이다. 라며 여민동락을 강조했으며, 군비(軍費)를 절약하고 낭비(浪費)되지 않게 꼼꼼히 챙긴 다음, 수시로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부하들과 함께 즐겼는데, 밤이 깊도록 이들로 하여금 즐겁게 마시고 뛰놀게 한 것은 내 스스로가 즐겁고자 한 것이 아니라, 고생한 장병들의 노고를 풀어주고자 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알아주는 자를 위해 목숨까지도 바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