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두표/시카고문인회
용(龍)을 그릴 때 몸을 모두 그린다음 마지막으로 눈동자(眼睛)를 찍는다. 는 뜻으로, 가장 핵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을 마지막에 마무리하여 일을 완벽(完璧)하게 끝내, 절정을 이루게 하는 일을 말합니다. 옛날 당시에는 비단 용(龍)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생물을 그리는 그림에는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의미로 눈동자를 마지막에 그렸다고 합니다. 중국의 남북조(南北朝)시대에 양(梁)나라에 <장승요>(張僧繇)라는 화가(畵家)가 있었는데 그는 육조(六朝)시대의 3대화가로 명성을 날렸던 사람으로, 붓 하나로 모든 사물을 실물과 똑같이 그려내는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잘하는 화가로 유명했다고 하며, 특히 도교(道敎)와 불교(佛敎)의 인물화에 뛰어나 주로 사원(寺院)의 벽화를 많이 그렸다고 합니다. 어느 날 <장승요>는 금릉사(金陵寺;남경)에 있는 안락사(安樂寺)라는 절의 주지가 용(龍)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고는 안락사 벽에 금방이라도 하늘로 승천할 것 같은 네 마리의 용을 그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위엄 있고 생동감 넘치는 용의 그림을 보고 모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그림에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네 마리의 용, 모두가 눈에 눈동자가 그려져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것을 이상하게 여겨 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그때마다 ‘만일 내가 용의 눈에 눈동자를 그려 넣으면 그림에 있는 용이 당장 벽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이오.’하자 사람들은 그 말을 믿기보다 오히려 그를 비웃고 눈을 그려 넣으라고 독촉을 하였다. 이러자 그는 용의 눈동자를 할 수 없이 그려 넣기로 하고는, 붓으로 점을 찍어 눈동자를 그려 넣는 순간,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치더니, 눈동자를 그려 넣은 용이 자신이 그려져 있던 벽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 올라갔고, 나머지 세 마리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그 말을 믿게 되었고 놀라운 그림 실력을 칭송해 마지않았다. 수형기(水衡記)에 나오는 글로, ‘張僧繇於金陵安樂寺, 畵四龍於壁, 不點睛. 點之則飛去, 人以爲誕因點其一, 須臾雷電破壁, 一龍乘雲上天, 不點睛者見在.(장승요어금릉안락사, 화사용어벽, 부점정. 점지즉비거, 인이위탄인점기일, 수유뢰전파벽, 일용승운상천, 부점정자견재.) 또 같은 삼대화가(三大畵家) 중 한사람인 <고개지>(顧愷之)도 산수화와 인물화에 뛰어났는데, 부채에다 인물화를 그리고, 마지막에 눈동자를 그려 넣었더니 그림의 사람이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이 탓에 그는 가급적 점정(點睛)을 하지 않아 사람들이 놀라지 않도록 배려를 했다고 한다. 또 한사람, <육탐미>(陸探微)도 송(宋)나라 명재(明宰) 때의 화가로, 초상화를 그리는 필법(筆法)이 훌륭하며 풍속도(風俗圖)와 조수화(鳥獸畵)도 매우 잘 그렸다고 합니다. 또 우리나라 <김동인>의 소설 광화 사에서는 모델인 눈먼 미소녀(美少女)가 화가에게 살해당하는 순간 쓰러지며 벼루의 먹물이 튀어 올라 눈 부분만 빠져있던 초상화에 생생한 눈동자가 찍히면서 완벽한 미인도가 완성됐다는 글도 있습니다. 이렇듯 아주 중요한 부분을 마지막에 완성하는 것인데, 이와 반대되는 상황이 ‘다 된 밥에 재 뿌리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며, 불법이든 편법을 써서라도 한방을 날리면 그냥 성공이 나에게 덥석 안길 줄 알았는데, 들통이나 스스로 재를 뿌리고 한방에 가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