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두표/시카고문인회
우리가 평소에 흔히 쓰는 말로서, 오십 보나 백보나 별 차이가 없이 거의 같은 것이다. 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 말의 출처는 맹자(孟子)의 양혜왕(梁惠王) 상(上)에 나오는 것으로 원문을 보면 ‘王好戰, 請而戰喩, 塡然鼓之, 兵刃旣接, 棄甲曳兵而走, 或百步而後止, 或五十步而後止, 以五十步笑百步, 則何如?’(왕호전 하니, 청이전유 라, 전연고지 하다가, 병인기접 하니, 기갑예병이주 하더니 혹백보이후지 하고, 혹오십보이후지 하니, 이오십보소백보 하니, 즉하여 입니까?) 즉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에 비유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둥둥 북이 울리면 나아가 병기들을 부딪다가 패색(敗色)이 짙어져 방패를 버리고 무기를 땅에 끌면서 도망가는데, 어떤 사람은 백 보(百步)를 도망간 후에 멈추고, 어떤 사람은 오십 보(五十步)를 도망간 후에 멈추었습니다. 이 경우 오십 보를 도망간 사람이, 백 보를 도망간 사람을 보고서 비겁하다고 비웃는다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맹자(孟子)가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왕은 즉시 ‘옳지 않습니다. 단지 백 보가 아닐 뿐 도망간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그와 같은 이치로 이웃나라보다 백성들이 많아지기를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백성이 농사철을 놓치지 않게 하면, 곡식이 이루다 먹을 수 없을 정도이고 고기와 자라가 이루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넉넉해지며, 또 도끼를 적절한 때를 지켜 산림(山林)에 들여 놓게 하면 재목이 이루다 쓸 수 없을 정도로 넉넉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곡식과 고기와 자라가 이루다 먹을 수가 없을 정도로 넉넉하면, 백성들이 산 사람을 봉양(奉養)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葬事) 지냄에 유감이 없게 하는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시작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맹자가 말하는 왕도정치라는 것은 ’임금(통치자)이 마땅히 지켜야할 일로서 인덕(仁德)을 근본으로 하는 정도(政道)(정치의 바른길)로 가는 정치를 말합니다. 맹자는 이러한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높은 금액의 보수를 거절하고 백성들이 배불리 먹으면서 부모와 처자식을 부양할 수 있는 안정적인 생업을 보장해 주는 군주를 찾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가 실현하려고 했던 이상적인 정치사상을 위해 애썼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그가 제(齊)나라의 객경(客卿)의 벼슬을 하며 1년에 만종(萬種)(14,000석)의 녹봉(祿奉)을 받았는데, 전에 다른 나라에서는 10만종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오직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해 그 보수의 10분지 1을 받으면서도 제나라의 객경에 있었던 것입니다. 왕이 나라의 풍년이 들어 양식이 넘쳐나서 개와 돼지가 사람이 먹을 양식을 먹는데도 거두어 저장해둘 줄 모르고(국고에 저장) 반대로 흉년이 들어 양식이 부족해서 길에 굶주려 죽은 시체가 있는데도 창고의 곡식을 풀어 나누어줄 줄 모르다가, 뒤늦게 ‘내 책임이 아니다. 흉년 때문이다.’ 고 한다면 사람을 찔러 죽이고도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 칼이 죽였다.’고 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이처럼 혜왕(惠王)의 정치 역시 다른 나라의 어떤 폭압적인 정치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이른바 ‘오십 보 백 보’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맹자가 왕에게 첫마디를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라고 전제를 한 것은 이미 왕의 평가를 일부 드러내고 비평을 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