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두표/시카고 문인회
순리(順理)를 거슬러, 잘못된 길을 고집한다. 는 말로 권력을 잡은 통치자가 참모들의 간언을 듣지 않고, 불통(不通)으로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은 춘추시대(春秋時代) 초(楚)나라에서 오(吳)나라로 망명하여 재상(宰相)이 된 <오자서>(伍子胥)(A.D?- 485)가 한 말로, 사마천(司馬遷)(B.C 145- 86)이 쓴 사기(史記)에 나오는 말입니다. <오자서>는 원래 초(楚)나라 사람인데, 자신의 부친과 형이 평왕(平王)에게 피살되자(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한(恨)을 품고, 오(吳)나라로 망명하였는데, 그곳에서 공자인 광(光)(姬光公子)를 도와 왕위에 오르도록 힘을 썼는데, 그가 바로 합려(闔閭)다. 이후 장군에 임명된 <오자서>는 초(楚)나라를 공격하여 원수를 갚았다. 그러나 당시의 그의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讎)인 초평왕(楚平王)은 이미 죽고 없었으며, 그의 무덤만이 남아있었다. 분(憤)이 풀리지 않은 그는 무덤을 파헤쳐 시체에 매질을 가했다. 그러자 그런 행동이 지나치다며, 친구인 <신포서>가 질책(叱責)을 하자, 그는 말하기를 ‘吾日暮途遠, 吾故倒行而逆施之.’(오일모도원, 오고도행이역시지.) 즉 날이 저물었는데, 갈 길은 먼 처지라 도리(道理)가 아닌 줄 알면서 부득불 순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 고 했습니다. <신포서>는 훗날 초나라를 부흥시킨 사람이었습니다. 앞에 글자에서 4자를 따서 ‘倒行逆施’(도행역시)라는 사자성어가 탄생하게 되었으며, 한편 오나라왕인 부차(夫差)는 월(越)나라에게 항복을 받은 지 5년이 되자, 그 여세로 이번에는 군대를 일으켜 제(齊)나라를 공격하였다. 그러자 <오자서>는 이를 반대하면서, ‘지금 월나라의 구천(句踐)은 밥을 먹을 때마다 쓸개를 맛보면서(嘗膽;상담) 오직 복수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습니다. 구천이 살아있는 한 오나라는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월나라는 오나라에 있어 내장에 병(病)이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에 비하면 제나라는 기껏해야 팔에 생긴 부스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월나라를 처 부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부차는 그의 충언을 듣지 않고 제나라를 쳐서 크게 이겼으며, 한발 더 나아가 추(秋)나라와 노(魯)나라를 멸망시키고 귀국하였다. 그리고는 <오자서>를 불러 책임을 추궁하였다. 이렇게 되자 부차는 더욱 기고만장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뜻대로 무엇이든지 하게 되었다. 이때 월나라에서는 서시(西施)라는 미녀를 부차에게 바쳐 미인계를 써서 정사는 돌보지 않고 그녀가 좋아하는 뱃놀이를 위해 대운하공사를 벌이는 등 나라의 국력을 낭비시키고 높은 세금과 강제노역으로 백성들을 심하게 괴롭히게 되었다. 이를 계속 반대하는 <오자서>를 사자를 시켜 촉루검(燭淚劍)이라는 칼을 주며 자살을 명령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스스로 자결하여 죽고 말았다. 그러자 결국 복수만을 다짐하며 기회를 엿보든 월나라는 군사력을 키워 오나라를 침공하여, 힘이 소진하고 부패한 부차는 고소산 으로 피신한 채 대부 공손 웅을 보내 항복하고 말았다. <오자서>의 충언을 듣지 않고 정사는 돌보지 않으며 주색에 빠지고, 자기가 듣기 원하는 말만 골라하는 아첨꾼들에 둘러 싸여있으면 망조가 드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것이며, 본인 자신만이 아닌 나라 전체가 멸망의 길로 간다는 교훈으로, 통치자의 정책, 인사가 매우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