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두표/시카고문인회
정(鼎)이란 솥을 말하는 것으로, 세발이 달리고 두 귀(耳)가 달린 모양의 청동기(靑銅器)를 말합니다. 옛날에는 이런 정(鼎)을 제사를 지낼 때, 제물을 담는 기구(器具)로 사용했습니다. 맹자(孟子)의 양혜 왕(梁惠王) 하편(下篇)에 정(鼎)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정(鼎)이란 옛날 고대의 제사에서 제물(祭物)을 담았던 그릇으로 신분에 따라 제물의 가짓수가 달랐습니다. 천자(天子)는 구정(九鼎)이라 하여, 9가지 제물을 사용했으며, 제후(諸侯)는 칠정(七鼎)으로 7가지 제물, 대부(大夫)는 오정(五鼎)으로 5가지 제물, 선비(士)는 삼정(三鼎)으로 3가지의 제물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노(魯)나라의 평 공(平公)이 맹자(孟子)를 만나보려고 하자 왕의 측근인 장창(臧倉)이 아뢰기를 <맹자>는 지금 자신의 모친의 장례식을 이전의 부친의 장례식 보다 지나치게 성대(盛大)하게 치렀을 만치 예의를 모르는 자입니다. 즉 신분에 따른 ‘정’(鼎)에 대한 예절(禮節)을 지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군주께서 먼저 그를 찾아가 만나실 필요는 없습니다. 라고 했다. 그러자 평 공은 ‘그러마.’라고 대답하고는 맹자를 만나지 않았는데, 이에 맹자의 제자인 약정자(樂正子)가 소문을 듣고 평 공을 만나보고 ‘군주께서는 어째서 스승을 만나지 않으셨습니까?’ 라고 묻자 평 공은 어떤 사람이 나더러 ‘맹자는 모친의 장례식을 이전의 부친 장례식 보다 지나치게 성대하게 치렀다. 고 했기에 가서 만나보지 않았던 것이오.’ 그러자 약정자는 우리 스승이 부친의 상 때는 사(士)의 예로서 삼정(三鼎)을 썼는데, 모친상에는 대부(大夫)의 예로서 오정(五鼎)을 썼다는 것을 두고 가리키는 것이지요? 하니까 ‘그런 것이 아니요. 장례에 쓴 관곽(棺槨;관과 관을 담는 궤)과 수의(壽衣)가 화려한 것을 말하는 것이오.’ 라고 말하자 그것은 예를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부친의 상 때와 모친 때 재력이 달랐기 때문이었을 뿐 정(鼎)의 예를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이렇듯 옛날에는 정(鼎)이 제사를 지낼 때 쓰는 도구였는데 이것이 민가(民家)로 전해지면서 부(釜)라 하여 발이 없고 부뚜막에 걸고 쓰는 가마솥이 되었으며, 정(鼎)은 청동(靑銅)(구리와 주석의 합금)인데 부(釜)는 철제, 또는 주물(鑄物)로 되어있으며, 가족 수에 따라 솥의 크기가 달랐으며
한꺼번에 밥을 지어 먹었으므로 ‘한 솥 밥을 먹은 사이’라고 한 것입니다. 옛날 시골에서는 혼례를 치를 때 온 동네사람들이 다 모였었는데, 마당에 큰 가마솥을 걸어놓고 장정들이 국수를 삶아 안쪽으로 들여보내면 여인들은 국물과 양념을 얹어 손님에게 내놓았는데, 한 솥 국수를 먹었다는 뜻으로, ‘잔치 국수’라는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옛날 어머니는 큰 가마솥에 밥을 지으며 쌀과 보리가 섞이지 않게 따로 앉히고는
아버지 밥은 쌀밥, 그다음 큰아들은 쌀밥에 보리가 약간 섞인 것 나머지는 쌀과 보리를 섞어서 푸고 마지막에는 누룽지와 배춧잎이 섞인 밑바닥 밥을 퍼서 먹었으며, 가마솥에다 간장 된장 만들고 집안의 대소사를 가마솥에서 이루어 냈습니다. 그래서 부정지속(釜鼎之屬)은 솥 가마 등 부엌그릇의 총칭을 말하며, 정좌(鼎座)는 세 사람이 솥발모양으로 마주하고 앉는 것을, 정담(鼎談)은 세 사람이 마주앉아 하는 이야기를 말 하고 옛날 무서운 형벌중의 하나로 정확(鼎鑊)은 죄인을 삶아 죽였던 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