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 ‘낙태 판결초안 유출’ 미궁으로…”유출자 못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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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만에 조사보고서 “우연 배제 못 해…재택근무로 정보 샐 가능성 커”

지난해 미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방대법원의 낙태 금지 판결문 초안 유출 사건이 미궁에 빠지게 됐다.

연방대법원은 19일(현지시간) 판결문 초안을 누가 어떤 경로로 유출했는지를 확정 짓지 못했다는 내용의 사건 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대법원은 “압도적 증거에 의해 책임질 사람을 식별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작년 5월 초안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대법원이 대대적인 자체 조사로 유출자 색출에 들어간 지 8개월 반만의 결과다.
다만 연방대법원은 향후 조사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언급했다.

앞서 지난해 5월 2일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 권리를 인정한 1973년의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뒤집기로 했다는 내용의 다수 의견서 초안을 입수해 보도했다. 의견서는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이 작성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당시 초안이 진본임을 인정하면서도 최종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다음달 24일 초안과 거의 같은 내용의 판결문이 나오면서 반세기 동안 확립된 여성의 낙태권 보장이 완전히 엎어지게 됐다.

미국에서 여성의 낙태권은 이념적 성향의 척도로 여겨질 정도로 민감한 문제인데, 이로 인해 미국 사회 전반이 둘로 쪼개져 극심한 내홍을 겪기도 했다.

이 유출을 놓고 중간선거를 앞두고 열세에 몰렸던 진보 성향의 법원 내부 관계자가 여론 흐름을 뒤집으려 일부러 유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가 하면, 반대로 낙태 금지 판결의 파급효과가 엄청난 만큼 논란의 초점을 초안 유출로 돌리려 보수 성향 관계자가 빼돌렸다는 관측 등 각종 설이 난무했다.

미 연방대법원 판결문이 사전에 대중에 공개된 것은 사실상 당시가 처음이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결과적으로 대법원의 낙태 금지 판결은 진보층과 여성표 결집 현상을 불러오면서 중간선거에서 수세에 몰렸던 민주당이 나름 선전하도록 하는 소재로 작용했다.
연방대법원은 보고서에서 조사관들이 그동안 97명의 직원을 126차례 대면 조사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들 모두 자신의 의견이 공개되는 것을 거부했다고 했다.

또 보고서는 일부 직원들은 초안 또는 대법관들의 표결 수치를 배우자에게 언급한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유출자를 지목하지 못한 대법원은 초안이 대법원 건물 안팎의 공공장소에 방치되면서 우연히 유출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조사관들이 직원들과 기자들 간의 관계도 면밀히 조사했지만, 유출자를 가려낼 정도의 입증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다만 법원의 컴퓨터와 네트워크, 프린터, 사용 가능한 통화 및 문자 기록도 조사했다면서 법원 밖의 누군가가 법원 정보기술 시스템에 부적절하게 접근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대법원 직원들이 재택근무로 전환하면서 법원의 민감한 정보가 고의적 또는 우발적으로 유출될 위험성은 커졌다고 지적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대법원 내에만 있어야 할 민감한 정보가 밖으로 새 나가기 쉬운 환경이 조성됐다는 게 연방대법원의 설명이다.

대법원은 조사관들이 수집된 일부 전자 데이터를 검토·처리하고 있고 몇 가지 다른 조사도 보류된 상태에 있다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조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