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엔 전기차, 하늘엔 위성…‘세상을 호령하는’ 머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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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력해지는 ‘머스크 제국’

▶ 전기차 보급 급증에 영향력 막대, 충전기도 테슬라 방식 통일 유력…“공장 우리에” 각국 정상들 러브콜
스페이스X, 위성 4,500개 쏘아올려…우크라 전 향방까지 좌우할 정도

17일 미국 뉴욕 튀르키예 하우스(대사관·문화원 등 튀르키예 정부 기관들이 입주해 있는 건물).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뉴욕에 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바쁜 일정을 쪼개 이곳을 찾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접견하기 위해서였다. 때맞춰 도착한 머스크는 의외의 동행인과 같이 접견실에 들어섰다. 캐나다 출신 가수 그라임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세 살짜리 아들 엑스(X)였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부인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머스크는 “그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다”며 “별거 중이라 내가 아들을 대부분 돌본다”고 했다. 이후 머스크는 엑스를 무릎에 앉혀 놓고 이따금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회동을 이어갔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을 때도 엑스와 함께였다.

자칫 외교적 결례로 비칠 수도 있었지만 이날 머스크의 돌발 행동을 지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아쉬운 처지이기 때문이란 해석에 힘이 실렸다. 튀르키예 측 요청으로 이뤄진 이날 회동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테슬라 공장을 튀르키예에 지어달라”고 한 것으로 알려진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만난 이튿날 머스크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도 만났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머스크와 접견만을 위해 뉴욕에서부터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의 테슬라 공장까지 날아왔다. 엑스(옛 트위터)에서 반유대주의 조장 콘텐츠가 증가하고 있는 데 대해 조치를 요구하고자 만난 자리에서 그는 머스크를 “미국의 비공식 대통령”이라고 칭했다. 한 번도 선출된 적 없지만 국민이 뽑은 대통령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는 의미를 압축한 표현이었다.

■ 사업가 수준 넘어선 영향력

테슬라를 비롯해 스페이스X(우주 탐사)·보링컴퍼니(초고속 자기부상열차 등 개발)·뉴럴링크(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칩 개발) 등을 설립하며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한 일론 머스크. 그는 24일 기준 약 332조 원 가치의 개인 자산을 보유한 세계 최고 부자다.

그러나 지금 각국 정상이 번호표를 들고 만나려 하는 머스크의 영향력은, 막대한 부를 거머쥔 ‘성공한 사업가’ 수준 이상이다. 그는 땅에서는 테슬라 전기차와 전 세계 2억여 명의 가입자를 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로, 하늘에서는 스페이스X를 통해 쏘아 올린 위성을 통해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머스크는 그가 SNS에 남기는 한마디가 정치사회적 후폭풍을 불러오는 파워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그의 엑스 계정 팔로어 수는 1억5,760만여 명으로, 한국과 독일의 인구를 합한 것보다 많다.

머스크의 회사가 제공하는 어떤 제품·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이라 할지라도 머스크와 분리된 삶을 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만약 머스크가 우크라이나에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는 위성 인터넷 서비스(스타링크)를 돌연 차단하기로 마음을 바꿔 먹으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내일은 오늘과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섬뜩하지만 허무맹랑한 상상만은 아니다. 지난해 머스크가 우크라이나의 인터넷 이용에 대한 비용을 받겠다고 했다가 돌연 없던 일로 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부자 한 사람에게 큰 힘이 집중되는 건 민주주의 가치에 정면으로 반한다. 게다가 그 1인이 변덕스러운 기질로 유명한 머스크다. 머스크의 권력은 그가 거느린 회사의 성공과 더불어 공고해지는 동시에 통제하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그를 품은 미국 정부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는 이유다.

■ “머스크씨, 공장 지어주세요”

머스크 제국을 떠받치는 두 축은 테슬라와 스페이스X다. 머스크는 2000년대 초반 비슷한 시기에 두 회사를 일구기 시작했고, 20여 년 만에 나란히 전기차와 우주탐사 분야를 개척했다.

테슬라의 전기차 공장(기가 팩토리)은 현시점 사실상 모든 국가가 유치하고 싶어 하는 0순위 생산 시설이다. 대부분 국가에서 전기차 보급률이 계속 높아질 가능성이 큰데, 기가 팩토리가 들어오면 전기차 생태계를 보다 빠르게 마련할 수 있음은 물론 일자리와 수출 등에도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현재 미국·중국·유럽 등에 가동 중인 기가 팩토리 중 최대 규모인 상하이 공장은 2만 명 넘는 직원을 고용하고 연간 최대 100만 대의 전기차를 만들 수 있다.

지난해 8월 머스크는 “2030년까지 10~12개의 기가 팩토리를 더 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머스크는 이를 지렛대 삼아 각국 정부와 우호적 관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올해만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프랑스, 인도 등 7개 나라 수장이 직접 머스크를 만났다. 하나같이 이들은 머스크에게 “우리나라에 공장을 지어달라”고 구애했다.

미국에선 6월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가 자사 전기차 충전에 테슬라 충전소(슈퍼차저)를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전기차 시장 상위 5개 업체 중 3개사가 테슬라 방식을 지원하게 된 것이다. 이 제휴로 테슬라의 충전기 연결 방식(NACS)이 미국 표준(CSS)을 밀어내고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직은 가능성일 뿐이지만 이렇게 되면 머스크의 영향력은 더 공고해질 수밖에 없다. 충전소를 어디에, 얼마나 세울지와 관련한 머스크의 결정이 교통 시스템 발전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궤도 위성 절반 이상 소유

테슬라도 엄청난 회사지만, 머스크의 권력에 날개를 달아준 건 스페이스X다. 머스크는 지구상 인터넷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목표로 2019년 5월부터 재사용 로켓 팰컨9을 이용해 지구 저궤도에 소형 위성을 쏘아 올리고 있다. 팰컨9은 한 번 발사 때마다 60개의 위성을 실어 나른다. 이렇게 지금까지 궤도에 올려놓은 위성이 약 4,500개다. 전체(약 8,000개)의 50% 이상이 스페이스X 것이란 얘기다.

비교적 비싼 이용료 때문에 비행기·크루즈 등을 중심으로 수요를 늘려가던 스타링크는 지난해 초를 기점으로 존재감이 급격히 커졌다.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통신망이 파괴된 우크라이나에, 머스크가 스타링크를 무상 제공하기로 결정하면서다. 그의 지원이 없었다면 우크라이나는 통신 불가로 절대적 열세에 처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머스크의 결정에 전황이 달리게 된 셈이다.

■동행에서 견제로… 워싱턴 기류

머스크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핵심 인물로 떠오르면서 그와 동반 성장을 꿈꿔왔던 워싱턴의 기류도 묘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머스크의 영향력이 미국 정부가 예견하고 통제하기 버거울 정도로 커져버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지난달 미 국방부 우주개발국은 방위산업체 록히드마틴, 노스롭그루만과 15억 달러 규모의 통신 위성 계약을 맺었다. 스페이스X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자체 위성군을 구축하겠다는 프로젝트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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