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물·통신, 모든 게 끊기고 연료도 바닥… “불 없어도 되는 캔으로 버텨”
생사오간 한달, 겨울옷만 챙겨 ‘빈손 피란’…국경서 번번이 허탕 “다섯번 왔다갔다”
▶ 2일 국경 넘은 한국인 가족이 전한 참상… “무차별 공격, 상상 이상으로 심각”
‘또 국경 닫힐라’… “’이슬람 휴일’ 금요일前” 국경 통과” 치열한 외교전
이스라엘군의 대피 경고를 듣고나니 소리 없이 폭격당해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를 느꼈다. 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스라엘군과 하마스의 전쟁이 한창인 가자지구에서 천신만고 끝에 26일만에 탈출한 한국인 최 모(여·44세) 씨 가족은 2일(현지시간) 밤 이집트 카이로에서 연합뉴스 등과 만나 생사의 순간을 오간 한달에 가까운 고통과 공포의 피란 생활을 들려줬다.
최씨와 한국으로 귀화한 팔레스타인계 남편(43), 이들의 10대 딸(18)과 아들(15), 그리고 지난 3월 태어난 7개월 된 늦둥이 막내딸 등 다섯 가족은 7년전 한국에서 남편의 고향인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 그 곳에서 터전을 잡았다. 5명 모두 한국 국적자다.
가자지구의 핵심부인 가자시티의 해변가 아파트에 살던 이들은 지난달 7일(현지시간) 전쟁이 터진 뒤 최씨의 시댁이 있는 텔 엘 하와로 거처를 옮겨 3∼4일 지내다가 “달릴 하와를 공격하겠다”는 이스라엘측의 대피 명령에 남부 도시 칸 유니스로 이동했다.
2일 오전 11시 15분께 극적으로 라파 통행로를 통해 국경을 넘는데 성공한 이들은 주이집트 한국 대사관측이 지원한 차량에 몸을 싣고 오후 8시20분께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도착했다. 약 400㎞에 걸친 여정이었다.
최씨는 전쟁 초기부터 집 근처에서 폭발음이 끊이지 않고 집이 흔들렸다고 돌이켰다.
특히 이스라엘의 공습 수위가 이전 전쟁 때와는 완전히 달랐고, 이스라엘 정부에서 대피하라는 경고까지 하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는 예전과 달리 이번 공격은 “무차별적”이라며 “병원도, 교회도, 학교까지 공격 안하는 곳이 없다”고 했다.
최씨는 “항상 전쟁이 나면 (우선 공격 대상이 되는) 아파트가 아닌 일반 주택인 시댁 쪽으로 피신을 했고 이번에도 시댁에 있으면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고 말했다.
결국 가자시티의 시댁을 거쳐 남부의 칸 유니스까지 대피한 이들은 전기와 물, 통신까지 끊기는 극한 상황도 경험했다.
“전기는 당연히 없고 해서 활동도 낮에 할 수 있는 것은 낮에 다 해뒀다. 태양광 등을 이용하는 유료 배터리 충전 서비스를 이용해 휴대용 배터리를 충전한 뒤 밤에 조금씩 켜서 아껴 썼다. 가스도 다 떨어졌다.
거주하던 곳이 시골이라 장작을 구해 불을 피워 식사 준비를 했고, 최대한 불을 사용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음식 위주로 먹었다. 사뒀던 흰콩, 토마토, 옥수수 캔 등으로 버텼다. 통신이 끊겼을 때는 위험한 지역을 확인할 수도 없어서 그냥 가만히 집 안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첫날부터 예전과 달리 강력했던 이스라엘군의 공습은 날이 갈수록 수위가 높아졌고, 결국 너무 위험한 상황이 올 거라는 생각에 가자지구를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최씨는 설명했다.
최씨는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나중에는 기름도 없고 해서 최대한 사용 안하려고 노력했다. 돈을 준다고해도 아예 없어서 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며 가자지구의 열악한 연료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주유소에서는 구급차나 긴급차량 이외에는 기름을 줄 수 없다고 했다”며 남편이 지인에게 사정을 해서 조금씩 얻어서 썼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 국경 올때 남은 연료를 다 사용했고, 국경에 도착했을 때는 연료가 없었다”고 돌아봤다.
국경 탈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외국 국적자에게 국경 문을 열 거라는 소문을 듣고 여러 차례 국경에 가서 기다렸지만, 번번이 허탕이었다.
“국경을 개방한다고 하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침부터 가서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오곤 했다. 국경이 한두시간만 열린 뒤 닫힐 수도 있어서 안 가볼 수도 없었다. 국경에서 칸 유니스까지 그렇게 다섯번을 왔다 갔다 했다”.
그런 와중에 가자시티의 집이 이스라엘군의 폭격에 무너졌다는 말을 들었고, 시부모님이 피란한 곳 인근에서도 폭격이 있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그는 “오갈데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여기서 상상하는 것, TV에서 보는 것보다 더 상황이 심각하다”며 “TV에 나오는 장면은 심각한 곳만 찍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더 심각하다”고 했다.
이스라엘이 본격적인 지상전에 돌입했을 무렵에는 통신이 끊기면서 가족, 친척들과의 연락도 끊겼다고 했다. 그는 “이틀 정도 그런 상황이 지속됐다. 사흘째 되니 서서히 회복돼 20번 걸면 한두번 정도 되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속에 이스라엘과 이집트, 하마스는 지난 1일 카타르의 중재로 외국 국적자 및 이중국적자와 중환자에게 이집트로 가는 라파 국경을 개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가족 모두가 한국 국적자였기 때문에 당연히 국경을 넘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난관은 이후에도 적지 않았다.
출국 허용 대상 인원이 대략 8천명으로 하루에 500명 안팎을 내보낸다고 해도 최소 16일이 걸리는 상황이어서 이들이 언제 가자지구를 벗어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통신 상황으로 인해 출국 허용 명단 포함 여부 확인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이틀 만에 국경을 넘었던 것은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이집트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국경 개방 이틀째 대기자만 7천명이 넘는 상황이었고 이슬람권의 휴일인 금요일이 되면 국경이 닫힐 가능성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각국이 자국민을 금요일 전에 라파 국경 밖으로 빼내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벌였다. 모든 채널을 총동원한 노력 덕분에 5명의 우리 국민이 목요일에 대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생사의 위기는 넘겼지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현실도 막막한 상황이다.
최씨는 “이집트는 우리 나라도 아니고 남편 나라도 아니니 일단 한국에 갈 계획을 하고 있다”면서도 “거기에서 미래를 다시 생각해 보려하는데, 돈도 없으니 어떻게 가야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도 최씨 가족은 이제 갓 7개월 된 막내딸을 보며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고 한다.
최씨는 무섭고 힘든 피난길에서도 “막내딸은 희망이었다. 울고 웃고 칭얼대는 딸을 보면서 희망을 찾은 것 같다. 웃을 일이 없었는데 딸이 웃으면 같이 한번 웃고 그랬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