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사자, 동영상 조작 주장…주지사까지 나서 “비난받아 마땅”
미국에서 중남미 출신 불법입국자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는 가운데 유력 흑인단체 대표가 중남미 출신들을 “강간범·강도·야만인”으로 일컬으며 이들에 대한 정부 지원을 비난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14일 시카고 언론과 CNN방송 등에 따르면 미국 최대 흑인 인권운동단체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일리노이 지부장 테레사 헤일리(58)는 지난 10월26일 열린 NAACP 지역 대표 회의에서 발언한 동영상 일부가 지난 12일 공개돼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패트릭 왓슨 NAACP 듀페이지 카운티 전 대표가 공유한 1분48초 분량의 동영상에서 헤일리는 정부가 불법입국자들을 위한 숙소 마련과 긴급 지원 서비스에 총력을 쏟고 있는 데 대해 반감을 표하며 “불법입국자들이 가난한 흑인 주민들 보다 더 호의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고 불평했다.
그는 “흑인들이 길거리에 깔려 있어도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 흑인들을 마약중독자·정신이상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법입국자들은 강간·주거침입·강도 행위를 일삼는다. 야만인 같다”며 “영어도 못하면서 우리를 미친 사람 보듯 하는 그들을 정부는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동영상 속 발언에 대해 “인공지능(AI)으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며 동영상이 조작됐다는 주장을 폈다.
헤일리가 문제의 발언을 한 자리에 있었다는 마이클 차일드레스 NAACP 듀페이지 카운티 신임 대표는 지역 WLS방송에 “헤일리의 연설 내용 일부만 발췌돼 전체 맥락이 오도됐다”며 “이 발언은 NAACP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두둔했다.
그러나 동영상을 공개한 왓슨 전 대표는 “헤일리는 과거 노예였던 이들의 후손들을 옹호하려다가 살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남미 출신들을 폄훼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위 직책을 맡은 사람이 혐오 발언과 분열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된다”며 사퇴를 요구했다.
J.B.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도 헤일리가 “비난받아 마땅한 발언”을 했다며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이번 사태는 시카고에 남부 국경지대에서 이송된 불법입국자가 급증하며 가뜩이나 골이 깊은 흑인과 라틴계의 반목이 심해진 가운데 나왔다.
CNN방송은 시카고시 데이터를 인용, “작년 8월 이후 시카고에 이송된 불법입국자 수는 2만5천700여 명”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헤일리는 해당 연설에서 “시카고 남부와 서부에 머물고 있는 망명희망자 수는 실제 8만 명에 달한다”고 주장하며 일리노이주의 중대형 도시들에 “섣불리 ‘성역도시'(불체자 보호도시)를 자처하지 마라. 불법입국자들을 태운 버스가 몰려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카고 선타임스는 헤일리가 NAACP 일리노이 지부장과 스프링필드 대표를 겸하고 있으며 NAACP 전국위원회 이사 선거에 나설 계획이라고 전했다.
시카고시는 남부 국경지대에서 이송된 중남미 이주민 가운데 1만4천여 명이 아직까지 가족이나 후원자를 찾지 못하고 정부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해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빈 건물과 학교 등을 개조해 만든 보호소는 이미 오래 전에 수용 한계를 넘어서 이주민들은 경찰서와 공항 로비, 길거리 등에서 임시 생활을 하고 있다..
시카고시는 이들의 월동용으로 도시 남부에 초대형 천막촌을 지을 계획이었으나 착공 사흘 만에 환경평가 보고서를 통해 해당 부지가 다량의 독성 중금속에 오염된 사실이 드러나 프리츠커 주지사가 공사를 백지화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