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美대선 등판 속 역대급 대미흑자…한국, 美 8대 적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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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사상 최대 445억달러…올 1분기도 작년보다 85% 증가
▶ “트럼프 당선시 여러 요구 있을듯…대응 방안 마련 필요”
▶ 가스 등 美상품 수입 전략적 확대 등 거론

오는 11월 미국 대선과 맞물려 ‘역대급’이라고 평가받는 한국의 대미(對美) 무역수지 흑자 규모를 놓고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경합주에서 앞서고 있다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미국발(發) 무역 압박 우려를 키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자국 무역 적자를 경제·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간주하고 상대국을 강력히 압박하는 통상 정책을 펴왔다.

따라서 한국이 미국산 상품 수입 확대를 비롯해 대미 무역수지 균형 방안을 선제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이젠 중국 아닌 미국이 최대 수출·흑자국…무역판도 변화

7일(한국시간)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작년 한국은 미국과 교역에서 사상 최대인 약 444억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냈다.

2020년 166억달러 수준이던 대미 흑자는 2021년 227억달러, 2022년 280억달러로 꾸준히 늘다가 작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400억달러를 넘겼다.

대미 수출 호조에 따른 것으로, 미국은 2002년 이후 21년 만에 한국의 최대 무역수지 흑자국이 됐다.

올해도 대미 무역수지는 흑자 기조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은 전통적으로 중국이었지만, 작년 12월 대미 수출이 대중(對中) 수출을 앞질렀다.

당시에는 ‘일회성’으로 여겨졌지만, 올해 2월과 3월에도 대미 수출이 대중 수출을 넘어서면서 미국이 한국의 최대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듯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대미 수출 호황, 대중 수출 부진은 미중 전략경쟁 상황에서의 공급망 재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자국 중심 통상 정책 등 환경 변화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분석된다.

전체 대미 수출의 30%가량을 차지하는 자동차의 경우 현지 생산 차량에만 원칙적으로 혜택을 주는 IRA 시행에도 예외적으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상용 리스 판매로 활로를 뚫은 상태다.

또 IRA에 대응해 북미에 진출한 K-배터리 업체들이 현지 생산을 본격화하면서 양극재 등 이차전지 소재 수출이 급증했다.

반도체 등 첨단 업종의 기업들이 미국에서 경쟁적으로 대규모 생산 시설을 짓고 있는 가운데 공장을 채울 기계류, 장비 등의 수출이 동반 상승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1분기(1∼3월)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132억6천만달러로 작년 동기(71억4천만달러)보다 86% 증가했다.

올해 월평균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약 44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의 월평균(37억달러)보다 많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올 한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중국의 경기 부진 장기화로 대중 수출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대미 수출 증가와 이에 따른 대미 무역수지 흑자 확대가 한국 경제의 핵심 엔진인 수출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양상이다.
◇ 무역적자 못 참는 트럼프…”부처 넘는 창의적인 사고 필요”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급증한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자칫 한국을 향한 ‘무역 압박’의 소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달 17∼2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경합주 7곳 가운데 6곳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보다 지지율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캠프는 평균 3%대인 미국의 관세율을 10%까지 끌어올리는 ‘보편적 기본 관세’를 도입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특히 트럼프 캠프는 무역 적자 원인으로 한국·일본·유럽·멕시코·캐나다산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을 지목했다. 트럼프 캠프의 ‘주요 타깃 무역 적자국’ 목록에 한국이 오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2021년까지만 해도 한국은 미국의 10대 무역 적자국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은 2022년 9위(439억달러·이하 미국 기준)로 10위권에 들었고, 지난해는 8위(514억달러)를 기록했다.

작년 미국의 10대 무역 적자국은 중국, 멕시코, 베트남, 독일, 일본, 캐나다, 아일랜드, 한국, 대만, 이탈리아 순이었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아시아 담당 부소장 겸 한국 석좌는 지난달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가 500억 달러이기 때문에 한국에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트럼프는 미국과 무역 흑자를 내는 나라를 싫어한다”고 했다.

따라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수출을 인위적으로 줄일 수 없는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대미 수입을 확대해 대미 무역수지 균형을 맞춰가는 방안을 선제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책 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 무역수지 흑자에 대한 압박이 강화될 가능성이 커 대응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산업연구원은 한국 정부가 과거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산 셰일가스 구매 확대 등을 정부 차원에서 홍보하고 실행했던 사실을 언급하면서 향후 정부가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를 전략적으로 줄이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윤진식 신임 무역협회장도 취임식에서 “최근 우리 수출이 증가한 미국을 중심으로 대한(對韓) 수입 규제 확대 가능성이 점증하고 있다”면서 대미 교섭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주한미군 분담금 증액 등 다양한 통상·외교적 요구를 해올 수 있다는 점에서 무역수지, 안보 등 분야 이슈를 망라해 전체 범정부 차원의 전략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시대가 다시 오게 된다면 무역 균형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미국의 요구가 있을 수 있다”며 “개별 사안으로 분리해서 보지 않고 전체 판을 연계시켜 우리나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부처를 넘는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할 때”라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