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방 증권당국 제기 민사소송 궐석재판
▶ SEC “신현성 설립한 차이 사용 거짓말”
▶미국 압송돼 형사재판 받을 가능성 커져
전 세계적으로 400억 달러가 넘는 피해를 가져온 암호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중심에 있는 권도형(32·사진·로이터)씨를 상대로 미국 증권당국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지난 5일 배심원단이 권씨와 테라폼랩스가 투자자들을 속인 책임을 인정한다고 평결했다.
뉴욕 남부연방법원 배심원단은 이날 열린 재판에서 권씨 및 권씨가 공동설립한 테라폼랩스가 가상화폐 테라가 안전하다고 속여 투자자들에게 거액의 손실을 입혔다는 원고 측 주장을 인정했다.
이번 평결은 향후 권씨가 미국에서 받게 될지도 모르는 형사재판과 현재 한국에서 진행 중인 또 다른 핵심 피의자 신현성(39)씨에 대한 불구속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원고인 연방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21년 11월 권씨와 테라폼랩스가 테라의 안정성과 관련해 투자자들을 속여 거액의 투자 손실을 입혔다면서 민사소송을 제기했었다. 이번 재판은 권씨가 지난해 3월부터 동유럽 발칸반도의 몬테네그로에 구금된 상태인 탓에 피고인이 직접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궐석재판으로 먼저 진행됐다.
재판을 맡은 제드 레이코프 판사는 테라가 안전한 자산이라고 투자자들을 속이려는 의도가 있었는지에 대해선 배심원단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보고, 지난달 25일 배심원단 재판을 시작했다.
SEC는 이번 재판에서 권씨가 신현성씨와 함께 2018년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를 설립한 뒤 2021년 5월 테라의 가치가 1달러 밑으로 떨어지자 가격을 부양하기 위해 제3자와 비밀리에 계약해 다량의 테라를 매수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2022년 5월 테라의 가치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떨어졌고 시스템 전체가 붕괴하면서 투자자들이 400억 달러가 넘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SEC는 추산했다.
아울러 권씨는 테라폼랩스의 블록체인이 한국의 간편결제 애플리케이션 ‘차이’에 사용됐다고 홍보했으나 실제 사용된 적이 없으며 홍보 내용은 모두 거짓이었다고 SEC는 결론지었다. ‘차이’는 신현성씨가 2018년 9월 설립했던 ‘지구전자결제’에서 사명을 바꾼 회사로, 테라에서 CFO로 일했던 한창준(37)씨가 2019년 6월 차이 대표 자격으로 테라와 파트너십을 체결한 바 있다.
SEC는 이번 궐석재판에서 내부고발자로 추정되는 2명과 결제 앱 ‘차이’의 최고제품 책임자의 증언을 통해 권씨 측의 혐의를 입증하려는 전략을 구사했다. SEC 측 변호사 데번 스타렌는 이날 최후변론에서 태라폼랩스의 성공 스토리가 “거짓에 기반해 지어졌다”며 “큰 스윙을 하고 빗맞았는데도 사람들에게 이를 숨겼다면 사기에 해당한다”라고 말했다. 반면 테라폼랩스 측은 SEC의 주장이 내부고발자 보상금을 받기를 바라는 증인들의 증언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SEC는 또 이번 소송에서 권씨와 테라폼랩스를 상대로 거액의 징벌적 배상금을 부과하고 불법 이익을 환수해야 한다고 법원에 요청했다. 이 사건에 대해 판사의 최종 형량 선고는 추후 내려지게 된다.
이처럼 연방법원 배심원단이 권씨와 테라폼랩스가 투자자들을 속인 책임을 인정한다고 평결함에 따라 한국에서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는 신현성 공동창업자와 한국 법무부의 범죄인 인도 청구로 지난 2월 한국으로 송환돼 검찰에 의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한창준 차이 대표 사이의 ‘3각 공모’에 대한 한미 양국의 수사 및 재판 결과에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권도형씨와 함께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피의자인 신현성씨는 유신정권의 실세였던 신직수 전 중앙정보부장의 손자로, 홍석현 중앙그룹 회장이 고모부이며 홍석현 회장의 장남인 홍정도 중앙일보 부회장과 사촌간이다.
테라는 신현성씨의 이같은 후광에 힘입어 업계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는데, 한국 검찰은 한창준씨가 수사의 핵심인 ‘테라-차이 관계’를 정확히 알려줄 ‘키맨’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몬테네그로 고등법원은 권씨의 미국 송환을 결정했다가 이를 뒤집고 지난달 한국 송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몬테네그로 대법원은 5일 권씨에 대한 한국 송환 결정을 무효로 하고 사건을 원심으로 돌려보냈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이에 따라 권씨의 송환지가 미국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노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