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주 ‘원정 낙태’ 급증… 1년여간 17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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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주 ‘원정 낙태’ 급증… 1년여간 17만명
지난 4월 애리조나주 스캇츠데일에서 낙태권 지지 시위가 열리고 있는 모습. [로이터]

▶ ‘로 대 웨이드’ 판결 폐지후 14개주서 사실상 낙태금지
▶ 11월 대선 첨예 쟁점 재확인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낙태권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지난해 1월 이후 15개월 동안 타주 원정 낙태를 선택한 산모가 17만 명이 넘는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정치매체 더힐은 지난 16일 낙태권 옹호 단체인 구트마허 연구소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1월부터 올 3월까지 미국에서 낙태 시술을 받기 위해 다른 주로 이동한 사람이 17만1,300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구트마허 연구소는 해당 기간 미국 내에서 임상의가 제공한 낙태 시술이 100만건에 달했으며 이중 15% 이상이 원정낙태로 추정된다고 추산했다.

이러한 수치는 2020년 이후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일부 주에서 진료에 대한 접근이 얼마나 어려워졌는지를 보여준다고 구트마허 연구소는 지적했다. 연구소는 또한 이 기간 이뤄진 낙태의 3분의 2 정도가 약물을 통한 낙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이 연구소의 데이터 과학자인 아이작 매도우 지메는 성명에서 “원정 낙태는 개인에게 재정적으로나 이동상의 어려움 등을 감수하도록 요구한다”면서 “사람이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수백, 수천마일을 이동해서는 안된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내 14개 주에서 낙태를 거의 전면 금지하고 있는데, 보수 우위의 연방 대법원이 지난 2022년 낙태를 헌법 권리로 보호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이후 크게 늘어났다. 이에 따라 캔자스주와 뉴멕시코주와 같이 낙태를 거의 전면 금지하고 있는 주와 접한 주에서 원정 낙태 건수가 급증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인접 주들보다 비교적 낙태가 쉬웠던 플로리다주는 지난달부터 ‘임신 6주 후 낙태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플로리다주는 오는 11월 대선 때 주 헌법에 낙태권을 명시한 개정안도 표결에 부친다. 플로리다 주의 조치에 대해 켈리 바덴 구트마허 연구소 부소장은 “플로리다주 주민 뿐 아니라 인근 낙태 금지 주에서 시술이 필요한 이들에게도 부정적 정책 변화”라면서 “한 주의 낙태금지 정책은 해당 주의 주민들 뿐아니라 인근 주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강간, 근친상간, 치명적인 태아 기형, 긴급 의료 상황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미국 남부주들에서 낙태 시술을 받을 길을 사실상 없애는 조치라고 웨싱턴포스트(WP)는 평가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1973년 1월 연방 대법원이 ‘7대2’로 내린 ‘로 대 웨이드’ 판결에서 여성의 낙태 권리가 미국 수정헌법 14조상 사생활 보호 권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태아가 자궁 밖에서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약 임신 28주) 전까지는 여성이 어떤 이유에서든 임신 중단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각 주의 낙태 금지 입법은 사실상 금지되거나 사문화됐다. 그러나 지난 2022년 연방 대법원은 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했고, 낙태에 대한 헌법상 권리가 인정되지 않으면서 낙태권 존폐 결정은 각 주 정부 및 의회의 권한으로 넘어가게 됐다.

<한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