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지 기자
낯선 시카고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마주 했던 추운 공기와 긴장감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보다 선명한 건 아무런 조건 없이 내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모든 방면으로 내 정착을 도운 같은 회사 동료(장미라 기자)의 손길이다. 그는 연신 미안해하는 내게 ‘괜찮아, 다들 주고 받고 사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는 충청도 출신의 부모님을 둔 대전 토박이다. 그의 아버지는 ‘주위 사람들에게 아끼지 말고 많이 나눠라, 베풀면 언젠가 돌아온다’라는 교육을 하셨다고 한다. 그 교육 덕에 완벽한 타인이자 외계인이었던 내가 여기서 보다 더 잘 뿌리내릴 수 있었다.
화창한 날에 시원한 바람이 불었던 지난 21일, 충청도민회 동포위안 큰 잔치가 열렸다. ‘동포 위안 큰 잔치’라는 타이틀을 접했을 때 왜 ‘위안’이라는 단어가 붙었을까 궁금했다가 이내 깨달았다. 타향살이는 외롭기 때문이다. 집을 떠나 새 환경을 개척한다는 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수많은 눈물과 좌절, 외로움과 싸워야만 하는 긴긴 여정이다. 그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런 조건도, 이해관계도 존재하지 않는 ‘위안’뿐이다.
‘동포 위안 큰 잔치’가 벌어진 함스 우즈공원에는 참석한 모든 이에게 나뉘어질 높이 쌓인 라면박스, 쌀 포대, TV등 각종 경품들이 줄을 지어 차곡차곡 벽을 이루고 있었다. 여러 한인단체와 업소, 개인들이 기꺼이 내놓은 나눔의 선물들이다. 수백명의 참석자들 모두 충청도민회 임원진 부인들이 손수 만들어 일일이 접시에 담아준 열 네 종류의 음식들을 너나할 것 없이 즐겁게 나눠먹었다. 곁들여진 술과 음료도 전부 공짜로 즐길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진안순 한인회장도 일손을 거들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아끼지 말고 많이 나눠라’는 장기자의 아버지처럼 충청도민회는 큰 잔치를 통해 동포사회에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었다. 이러한 베풂의 정신이 큰 잔치가 무려 39주년 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힘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올해는 각 도민회가 뭉쳐 새로 발족한 시카고향우회협의회가 특별 후원해 지방색 없이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더욱 빛을 발했다. 시카고 동포사회가 존재하는 동안 쭉, ‘아끼지 말고 나누는’ 베풂의 장인 충청도민회의 큰 잔치가 계속해서 열려 서로를 위안해 주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