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 세상] 드레스 메이커 ( The Dress Maker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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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kim

조이 김 영화 칼럼니스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서부극 ‘용서받지 못할 자’ (The Unforgiven 1992) 에서 냉혹한 보안관 진 해크먼과 그 일당들을 송두리째 해치우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 행위의 타당성을 떠나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하물며 힘없는 어린 아이에게 행해지는 횡포에 집단으로 침묵하고 동조했던 마을 전체에 대한 응징이라면 당연히 짜릿한 심정으로 복수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1951년, 호주의 오지 마을  ‘던카타’. 그 황량한 길을 따라 먼지를 일으키며 버스가 도착하고 챙 넓은 모자에 세련된 드레스를 입은 멋진 여자가 내립니다. 그녀는 25년전, 마을의 세력가 에반 페티맨 의 아들 스튜어트를 살해한 혐의로 고향에서 추방당했던 왕따 소녀 틸리(케이트 윈슬렛)입니다. 딸을 빼앗긴 틸리의 엄마는 충격과 비통으로 정신이 나가 ‘미친 몰리’로 불리우며 낡은 집에서 홀로 지냈습니다.

딸이 돌아왔는 데 알아보지도 못하고, 정신과 육신이 쇠약한 상태입니다. 틸리는 엉망이 된 집을 치우고 엄마를 씻기고 요리를 합니다. 또 마을 사람들 집 지붕마다 골프 공을 날려 자신이 돌아 온 것을 알립니다.  그리고 가져 온 싱거 미싱과 고급 옷감들을 식탁에 펼칩니다. 틸리는 파리, 밀라노 ,런던등을 돌며 유명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어릴 적 친구 테디는 그동안 틸리의 엄마를 돌보았고 틸리의 귀환을 반깁니다. 마을 경찰관 패럿은 몰래 여장을 하고 실크, 벨벳, 레이스같은 옷감들을 좋아하는 데, 틸리가 만든 우아한 드레스에 반해서 즉시 그녀의 팬이 됩니다.

한편 틸리는 25년전 사고를 기억해 내려고 애씁니다.

이웃 마을과 풋볼 시합이 열리고 시합장에 붉은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틸리가 나타나자 선수들이 동요하고 마을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틸리가 요염한 자태로 상대편 선수들의 정신을 산란시켜 던카타 마을이 승리합니다.

촌스러운 잡화점 딸 거투르드는 틸리가 만든  드레스를 입고 공주처럼 변신하여 짝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을 얻습니다. 그때부터 마을 여자들은 줄지어 틸리에게 드레스를 맞춰 입습니다. 엄마의 기억도 조금씩 돌아 오고 틸리와 테디는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거투르드의 결혼식날, 25년전 사건 기록을 읽게 된 틸리는 당시 선생이었던 미세스 헤리디엔이 에반 페티맨의 압력으로 거짓 증언을 했음을 알게 됩니다. 분노한 틸리는 서류를 들고 식장에 달려가 소동을 일으키고 패럿은 틸리에게 그동안 숨겼던 진실을 밝힙니다.

에반 페티맨은 틸리의 친부입니다. 연인이었던 몰리의 임신을 알고도 출세를 위해 부잣집 딸과 결혼 했습니다. 틸리를 괴롭히던 아들 스튜어트가 죽자 증언을 조작하고 권력을 이용해서 틸리를 추방시킨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옛 스캔들을 들먹이며 틸리 모녀를 험담하고 따돌립니다. 테디는 틸리를 25년전 사건 현장으로 데려가고 틸리는 천천히 기억을 되살립니다.  못된 스튜어트는 틸리를 벽에 세워놓고 자기 머리로 틸리의 배를 들이 받는 장난을 즐겼습니다. 그날도 사정하는 틸리를 협박해서 벽에 세우고 돌진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틸리가 옆으로 비켜섭니다. 스튜어트는 스스로 벽에다 머리를 들이 받고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자신이 살인자가 아닌 것을 확인한 틸리는 비로소 안도와 해방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테디가 사고로 죽습니다. 비탄에 빠진 틸리에게 엄마는 딸의 재능을 일깨우며 이웃 마을에서 열리는 연극 경연 대회 의상을 만들라고 격려합니다. 외출한 엄마가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엄마의 장례식날 마을 사람들은 한명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경관 패럿만이 진심으로 틸리를 위로합니다.

마을 여자들은 연극 의상을 다른 곳에 주문합니다.

드디어 대회날, 마을이 텅 빕니다. 멋진 드레스를 차려입은 틸리가 싱거 미싱을 들고 집을 나섭니다. 언덕에서 마을을 향해  석유를 듬뿍 적신 옷감을 길게 펼치고 라이터로 불을 붙입니다.

연극 경연 대회에서 마을 여자들은 틸리가 만든 환상적이고 우아한 경쟁팀 의상들을 보고 감탄합니다. 틸리는 기차를 타고 떠나고 마을은 불길에 휩싸입니다.

호주 작가 로잘리 햄의 베스트셀러를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영화 내내 강렬한 색감과 고급 원단으로 공들여 제작한 당시의 의상들이 눈을 즐겁게 합니다. 누명을 벗기 위해 돌아 온 틸리가 총이 아닌 싱거 미싱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과정이 기발하고 유쾌합니다. 권력에 아부하고 약자에게 가혹하며 이기심과 허영심 덩어리인 마을 사람들은 현재를 사는 인간의 자화상입니다. 독특하고 스릴있는 스토리, 웃기고 개성있는 조연들, 아기자기한 소품,  셋트와 촬영, 음악이 섬세하고 아름답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쓸쓸하고도 통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