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세포들끼리 전기적 신호를 주고받으며 활동하는 신체 기관이다. 건강한 상태에서는 이 전기적 신호가 적절히 만들어지고 제어되지만, 여러 원인에 의해 뇌 조직이 과다한 전기를 방출하면 발작이 일어나게 된다. 뇌전증은 이런 발작이 특별한 유발 요인 없이 최소 24시간 이상의 간격을 두고 2회 이상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 소아 뇌전증은 소아기에 이 같은 증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소아 뇌전증은 유전적 요인, 미숙아, 분만 중 뇌 손상이나 저산소증, 뇌 감염, 선천적 뇌 구조 이상, 외상 등으로 발생한다. 이들 원인은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아직 기전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경우도 많다.
뇌전증은 전체 인구의 0.5~1%에서 나타날 만큼 비교적 흔한 신경계 질환 중 하나로 소아청소년기와 노년기에서 발생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15만933명이 뇌전증으로 병원을 찾았고, 이 중 20세 미만 소아 뇌전증 환자는 3만703명으로 20.3%를 차지한다.
박유진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뇌전증이 있으면 대개 지능이 낮거나 학습 능력이 떨어질 것으로 오해하고 숨기려 하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지기능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뇌전증은 숨겨야 하는 질환이 아닌, 정확한 진단으로 치료가 가능한 질환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아 뇌전증은 성인 뇌전증과 여러 가지 차이를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소아가 어른보다 빨리 심해지거나 빨리 낫는다는 점이다. 이는 잘 낫는 뇌전증과 잘 낫지 않는 뇌전증이 모두 소아에서 발생한다는 의미다. 소아는 비교적 적은 양의 항경련제 복용으로도 잘 낫지만, 어른에 비해 증상이 심하고 약물치료에 반응하지 않아 성장과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뇌전증도 많다. 뇌가 이미 성숙한 성인의 경우에는 뇌전증으로 뇌신경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적지만 소아는 이로 인해 뇌신경 발달 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발작은 크게 뇌 전체에서 시작되는 전신 발작과 뇌의 국소 부위에서 시작되는 부분 발작으로 나뉜다. 발작이라고 하면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눈을 치켜뜨고 소리를 지르며 입에 거품이 고이는 대발작을 주로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부분 발작이 더 흔하다. 부분 발작은 한쪽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거나 한쪽 얼굴만 씰룩이며 멍한 표정으로 고개와 눈이 한쪽으로 돌아가면서 입맛을 다시거나 손을 만지작거리는 것과 같은 증상을 보인다. 전신 발작의 경우에는 몸이 전체적으로 굳어지다가 떠는 전신강직간대발작, 갑자기 하던 행동을 중단하고 멍하니 바라보거나 고개를 떨어뜨리는 결신발작, 깜짝 놀라듯이 움찔거리는 간대성근경련발작이 있다.
박유진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소아가 전신 발작 증상을 보일 경우에는 평평한 곳에 눕히고 침이나 토와 같은 분비물이 기도로 넘어가지 않도록 고개를 돌려줘야 한다”며 “대부분 1~2분 내로 발작을 멈추지만 5분 이상 지속된다면 응급실 내원을 고려해야 한다. 팔다리를 주무르거나 바늘로 손발을 따는 등의 요법은 증상 완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치료는 약물치료, 식이요법, 수술치료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대부분 약물치료를 우선으로 한다. 소아청소년 환자의 약 70%는 약물치료로 발작의 조절 또는 완치할 수 있다. 보통 초기 치료는 한 가지 항경련제로 시작하는데, 항경련제 선택은 뇌전증의 세부 진단에 따라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약제를 선택하고 소량으로 시작해 점차 증량하며 치료 반응에 따라 적절한 복용량을 결정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약물치료를 시작하면 항경련제를 2~3년 이상 복용한다.
최근 개발된 항경련제는 대뇌에 미치는 부작용이 적어 비교적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지만, 일부 체질적으로 민감한 환자에서는 장기간 투여할 때 인지기능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투약 전후 환자의 인지기능과 대뇌 활동의 저하가 있는지 면밀히 살피고 이런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약제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유진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소아 뇌전증의 경우 사회적 편견과 오해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병을 숨기는 경우가 있다”며 “뇌전증은 불치병이 절대 아니다. 약물을 쓰거나 병소를 제거하면 대부분 조절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장익경 특파원 / 서울 시카고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