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해 한인 초등생 부친의 절규
▶ 백인 학생들, 한인 초등생 집단폭행 파문
▶“아시안이라며 때리고 목조르고 밟기까지…아이들 트라우마에 학교도 못 가고 있어”
▶학교측 “아이들 싸움일 뿐” 분리요구 무시
평범한 목요일 평범한 아침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큰 아들과 프리킨더에 다니는 작은 아들에게 아침을 먹이고 학교에 가자며 재촉했다. 등교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밝지 않았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아이들을 만났다. 큰 아이가 아침보다 조금 더 어두워 보였다. 아내의 전화가 울렸다. 큰 아이와 같은 반에 다니고 있는 학부모의 전화였다. 심각한 얼굴로 통화를 끝낸 아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큰 아이를 불러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캐묻기 시작했다. 내성적인 아이는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덩달아 궁금해져 무슨 일이냐고 다그치자 아이 대신 아내가 말했다. 큰 아이가 학교에서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평범했던 일상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LA 한인타운 인근의 유명 차터스쿨에 다니는 자녀가 학교에서 백인 학생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한 한인 학부모의 울분에 찬 증언이다. 한인 학생들이 다수 재학하고 있는 ‘라치몬트 차터스쿨’에서 한인 학생 2명이 백인 학생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신체적 후유증과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학교 측은 미온적인 태도를 일관하고 있어 파문이 일고 있다.
본보를 찾아 인터뷰를 진행한 피해 학부모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인종적으로 다양한 학생에게 뛰어난 공교육을 제공하겠다는 이 학교에서 실상 벌어지는 일들은 아이들의 집단폭행과 어른들의 인종차별”이라며 “가해자를 두둔하는 학교 측의 태도가 사실상 2차 가해에 해당한다”고 절규했다.
피해자 A군의 아버지 정모씨에 따르면 지난 9월19일 오전 2교시 쉬는 시간 라치몬트 차터스쿨 운동장에서 한인 A군과 B군이 백인 초등학생 6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가해 학생들은 피해 학생들을 훌라후프에 가둬 놓고 때리다가 눕혀서 목을 조르고 발로 밟았다. 폭행을 가하며 가해 학생들은 피해자들을 향해 “이들은 영어를 못하니 누군가가 통역을 해야 한다”고 소리치고, 주변에 있는 동급생들에게 “우리를 도와줘(Help me)”라고 외치며 폭행에 동참하기를 권유하기도 했다. 쉬는 시간 20여분동안 이어진 폭행을 눈치 채거나 제지하는 교사나 교직원은 단 1명도 없었다.
정씨의 아들 A군은 전신타박상을 입었고, B군은 사건 당일 걸을 수도 없을 정도로 다리에 고통을 호소했다. 신체적 부상보다 더 큰 문제는 정신적 트라우마였다. 사건 이후 A군은 자다깨서 일어나 멍하니 앉아있는 일이 많아졌다. A군에게 왜 그러냐고 물으면 “그냥 너무 무섭다”고만 대답했다. 학교 근처에만 가도 두려움이 얼굴에 나타났으며, 갑자기 동생을 심하게 때리거나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분노를 내보이기도 했다.
B군은 더 심각했다. 갑자기 땀을 비 오듯이 흘리거나, 집 안에 있는 화장실도 무서워 가지 못하고 있다가 실수를 하고 펑펑 울기도 했다. 정씨는 “사건 이후 아이들이 학교에 등교하지 못하고 있지만 학교 측에서는 단 한 번도 아이들의 안부에 대해 묻지 않았다”며 “사건 이후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등교하는 가해학생 무리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집에만 있는 우리 아이와 비교돼 너무 마음이 아프고 억울해 미칠 지경”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학교 측은 사건개요와 가해자 처벌 등은 공식적으로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학생들 간 싸움(fight)이었다는 표현으로 은폐 축소하려고만 하고 있다”며 “그 어떤 질문을 해도 학생의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건 발생 이후 정씨와 B군의 부모는 학교 측과 미팅을 갖고 가해 학생들의 처벌을 요구했지만, 학교 관계자는 비아냥거리며 “6살 아이에게 당신은 무슨 처벌을 원하느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들은 정씨가 “지금 일어난 일이 6살 아이들이 벌일 수 있는 행동이냐”고 되묻자 학교 관계자는 대답을 회피했다. 정씨는 가해 학생들과의 분리를 요청했지만 학교 측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할 수 없다”며 한 교실에서 계속 생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정씨는 “대신 수업이 끝난 후 담임교사가 하루의 일과를 점검하겠다고 했다”며 “학교는 피해 학생들의 트라우마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에 따르면 가해학생 무리에게 피해를 당한 한인 학생은 A군과 B군 뿐만이 아니었다. 정씨는 “한 한인 여학생도 킨더가든 때 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해당 학부모가 1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반을 분리시켜달라고 요구했지만 학교는 들어주지 않고 같은 반으로 배정했다”며 “가해자도 피해자 무리도 한 반으로 배정한 학교의 선택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씨는 “사건 발생 후 현재까지 우리 가족도 B군 가족도 모두 일상이 파괴됐다. B군의 어머니는 상태가 안 좋은 아들을 돌보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둘 정도”라며 “이 사건이 묻힌다면 앞으로 한인 학생들의 안전을 누가 보장할 수 있겠나. 더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다. 싸워서 아이를 전학 보내지 않고 이 학교에 계속 다니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본보는 피해 학부모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학교 측에 입장을 요구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