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울한 살인혐의” 주장
▶한국태생 화교 케니 리씨
▶ ‘주안에~’ 교도소 사역팀
▶구명운동 적극 펼쳐 주목
택시기사 살인죄로 기소돼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무려 25년째 교도소에서 복역하면서 “억울한 혐의”를 주장하고 있는 한국 태생 화교 재소자의 스토리와 그에 대한 구명운동이 주목을 받고 있다. 밸리 주안에교회 ‘주안에호프 교도소 사역팀’이 전한 샌디에고 인근 RJ 도노반 교도소에 수감 중인 케니 리(53)씨의 이야기다.
사역팀에 따르면 케니씨는 1971년 한국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대만 출신 화교인 그의 부모는 작은 중국 식당을 운영했다. 그는 “부모님은 한국전쟁 직전 공산당 세력을 피해 한국으로 이주해 왔지만, 한국에서의 삶은 차별의 연속이었다”고 회고했다.
케니씨가 14세가 되던 해 그의 가족은 한국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한국에서의 삶이 더 익숙했던 부모는 LA 한인타운에 정착하기로 결정하고 작은 아파트를 렌트했다. 그러나 케니씨에게 미국에서의 학교 생활은 재앙과도 같았다. 언어장벽으로 인한 무시와 조롱이 이어졌고, 한창 사춘기였던 그는 살아남기 위해 싸움을 일삼았다.
그러던 중 중국계 갱단을 알게 됐고, 따돌림에 시달리던 그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어딘가에 소속돼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했다. 그러던 1992년 같은 갱단의 단원들이 보석상을 털 계획으로 차량을 운전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했고, 그들이 택시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택시기사가 살해됐다.
그런데 그로부터 7년 뒤인 1999년 케니씨는 음주운전(DUI) 검문에 걸리면서 느닷없이 1992년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됐다. 케니씨에 따르면 1992년 그는 중식당과 여자친구 부모님의 식당 두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사건이 일어난 날 그는 당시 여자친구와 여자친구 부모님, 친척들과 함께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확인됐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재판 때 인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과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일에 엮여들면서 현재까지 25년을 복역하게 된 것이다.
케니씨에 대한 구명 운동은 한인 교계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2014년 케니씨는 한 한인 교회 교도소 사역자와의 만남을 계기로 불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하며 신앙을 통한 삶의 새로운 목적과 정체성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신학교에서 재소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신학공부를 시작해 2017년 학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이에 만족하지 않고 석사과정까지 마친 그는 현재 신학박사 학위를 준비 중이다.
또한 교도소 내에서 할 수 있는 커뮤니티 칼리지 과정을 온라인으로 이수한 후 작년 UC 어바인으로 편입해 사회학 공부도 병행하고 있다. 더불어 그는 멘토 앤 카운슬링 프로그램을 통해 자격증을 취득하고 교도소 내 재소자들을 위한 카운슬러로도 활동 중이다.
케니씨는 서면을 통해 “내가 갱단원이었고 반사회적인 생활을 했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살아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분명히 사람을 죽인 일이 없다”고 밝혔다.
교도소 사역팀은 이런 케니씨의 구명을 위해 한인 커뮤니티와 교계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서명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주안에호프 교도소사역팀의 앤지 조씨는 “케니씨의 사연이 널리 알려져 한인사회와 교계가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며, “많은 분들이 뜻을 함께해 주신다면 케니씨가 다시 자유로운 삶을 되찾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황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