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문학이 만나는 특별한 자리: 필내음 50주년 기념행사
2024년 11월 9일 오후 5시, 대전 태화장에서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문학동아리 ‘필내음’이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다. 의사와 의대생들이 문학과 예술을 통해 감정을 나누고, 깊은 교감을 이어온 반세기를 기념하기 위해 약 100여 명의 회원과 내외빈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번 행사는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자리가 아니라 필내음이 걸어온 여정을 기념하고,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50년을 설계하는 의미있는 순간이었다. 특히 이날은 초대 회장인 송세헌 원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며 필내음의 역사와 가치를 재조명하는 시간으로 더욱 빛났다.
필내음의 시작: 50년 전의 따스한 기억
‘필내음’은 1974년 충남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탄생했다.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품은 의과대학생들과 간호학과 학생들이 모여 손기섭 교수의 지도 아래 첫발을 내디뎠다. 이들은 매월 시를 합평하고, 매년 시화전을 열며 문학적 감성을 키웠다. 당시만 해도 ‘문학을 하는 의대생’이라는 이색적인 조합은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이를 통해 다른 대학 문학동아리와의 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 결과, 필내음은 단순한 학내 동아리를 넘어 문학적 성과를 이루는 장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까지 12명의 시인과 3명의 수필가를 배출하며, 의사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문학가로서의 길도 열어왔다.
첫 번째 동인지 『소나기를 만나다』(창간호)와 두 번째 동인지 『기침이 하는 말들』(제2집)을 발간하며, 필내음은 자신들만의 문학 세계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회원들로 하여금 각종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문학 단체에서도 활동적인 모습을 보이게 했다.
위기의 순간, 새로운 도약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 학부생들의 모임은 점차 축소되었고, 필내음은 OB(졸업생) 모임 중심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동아리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새로운 세대의 관심이 줄어드는 현실은 큰 도전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것은 2022년이었다. 한국의사수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학부생이 동아리에 합류하면서 다시금 학부생들의 참여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학부생과 오비 간의 협력 속에 정기적인 활동이 재개되었고, 필내음은 과거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50주년 기념문집 『필내음』 출간: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다
이번 50주년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창립 기념문집 『필내음』의 발간이었다. 이는 필내음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의미 있는 작업으로, 회원들이 오랜 시간 동안 남긴 작품들을 한데 모아 새로운 세대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문집에는 시, 산문, 에세이 등 다양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며, 각 작품은 회원들이 문학을 통해 삶과 인간에 대해 탐구한 결과물이다. 이를 통해 필내음은 단순한 동아리를 넘어, 사람과 사람, 세대와 세대를 잇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행사의 열기 속으로: 송세헌 초대 회장과의 특별한 순간
행사의 초반부는 김연종 한국의사시인회 회장의 축사로 시작되었다. 그는 “필내음은 단순히 의대생들의 문학 활동을 넘어, 인간적인 의술을 가능케 하는 감수성과 통찰을 키워온 특별한 공간이다”라며 동아리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이후 필내음 초대 회장인 송세헌 원장에게 감사패가 전달되며 감동적인 순간이 이어졌다. 그는 필내음을 창립하고 이끌어온 50년간의 기억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필내음의 첫 모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글을 쓰고 시를 읽는 모임이 아니라, 서로의 고민과 감정을 나누는 따뜻한 가족이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그러한 기억을 되새기며 앞으로의 미래를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송 원장은 또한 자신의 문학적 활동과 예술 세계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필내음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문학과 예술은 의사로서의 제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습니다. 시를 쓰고 사진을 찍으며 느낀 감정들은 의료 현장에서 환자들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미래를 향한 새로운 다짐
이날 행사의 또 다른 특별한 순간은 회원들의 작품 낭독이었다. 병원에서의 경험을 녹여낸 시와 인간의 삶과 죽음을 성찰한 에세이, 그리고 자연과 사람을 예찬하는 시가 하나하나 무대 위에서 시낭송가들의 음성으로 선보였다. 의사이자 문학가로서 그들이 가진 독특한 시각에 깊이 공감하며 스스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행사는 끝으로, 필내음의 새롭게 지어진 공간에 대한 소개와 함께 미래를 향한 다짐으로 마무리되었다. 필내음은 단순히 과거와 의사라는 직업에 안주하지 않고, 문학을 하려는 학부생과 함께 문학적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의학과 문학의 특별한 교차점: 사람을 향한 사랑
필내음 50주년 기념행사는 의학과 문학이 만날 때 만들어지는 특별한 감동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는 자리였다. 단순한 치료자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을 실천하고자 했던 필내음의 정신은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
송세헌 원장의 마지막 말이 이날의 의미를 압축적으로 전했다.
“필내음은 우리에게 글을 쓰는 방법뿐만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의사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제 50년의 역사를 넘어, 필내음은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의 여정은 문학이라는 창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 그 자체이며, 그 끝은 항상 사랑과 이해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