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트럼프 선봉’ 주류언론 위기 또 보여준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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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로이터]

대선일인 지난 5일 밤 개표가 시작될 무렵까지만 해도 승부는 ‘초박빙 접전’으로 며칠째 이어질 거라 여겨졌다.

대선 전까지 미국의 대표적 언론사와 여론조사 기관이 발표한 거의 모든 여론조사의 지표가 예측불허의 박빙 구도를 전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론조사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것으로 판명이 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음날인 6일 새벽 예상보다 쉽고 빠르게 당선을 확정 지었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법까지 동원해 맹점을 보완했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이들 언론사와 여론조사 기관은 트럼프 당선인이 승리한 지난 2016년에 이어 다시 한번 처참한 굴욕을 맛봤다.

표심의 흐름과 판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인데, 주요 신문사와 방송사들에 이보다 더 뼈아픈 건 언론의 고유 영역으로 꼽히던 의제 설정 기능이 더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욱 확연히 드러났다는 점이다.

극소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이 대선 기간 ‘반(反)트럼프’ 선봉을 자처하며 비판적 기사를 쏟아냈는데도 많은 미국인은 이를 믿지 않는다는 점을 대선 결과가 말해주고 있어서다.

오히려 주류 언론을 근거 없이 ‘가짜 뉴스’라고 몰아붙인 트럼프 당선인의 말을 더 많은 유권자들이 신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번 대선 기간 미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된 여론조사 결과는 주류 언론의 의제 설정 기능 약화로 인한 신뢰 위기를 수치로 보여준다.

하버드대와 노스이스턴대, 노스웨스턴대, 럿거스대 연구팀이 ‘공공 보건·기관 프로젝트'(CHIP) 일환으로 지난 8월 30일부터 10월 8일까지 미국 50개 주와 워싱턴DC의 성인 2만5천51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장 많은 29%가 올해 대선 정보의 가장 중요한 출처로 ‘친구나 가족’을 꼽았다.

‘뉴스 미디어’를 택한 응답자는 26%에 그쳐 미국인 10명 중 7명 이상은 뉴스 미디어 이외에서 선거 정보를 얻은 셈이다.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이를 두고 “미국인의 삶에서 뉴스 미디어의 역할이 축소됨에 따라 ‘사실’이 유권자에게 전달되는 방식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 짚었다.

미디어의 분산과 평준화로 인해 정보가 뉴스 미디어에서 나오는 1차 출처에서 유튜버, 팟캐스터, 틱토커, 엑스(X·옛 트위터) 등 저널리스트가 없는 매체로 흘러가고, 결국 가족이나 친구와의 대화에서 정보를 얻는 ‘미로’ 같은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악시오스는 이러한 정보 흐름 속에서 사실은 왜곡되고 노골적으로 조작되기 쉽다고 지적하는 동시에 이러한 역학관계가 트럼프 당선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갈수록 독자를 잃고 있는 불리한 지형에 더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은 주류 언론에는 더욱더 위기로 다가올 전망이다.

언론의 존재 근거인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성역 없는 비판’이 더 어려워질 가능성도 커 보인다.

최악의 경우 일부 방송국의 면허 취소나 백악관 취재 등록 제한 등의 조치가 나오면서 취재원에 대한 접근 자체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이미 지난 5∼6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열린 공화당 개표 행사 장소에 트럼프 당선인에게 비판적이던 일부 매체는 출입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