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당. 대전 시민에겐 추억이고, 전 국민에겐 명물이다. 튀김소보로 한입에 담긴 정성과 전통, 그리고 그 뒤를 묵묵히 지켜온 사람들이 있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22일 대전시 중구 대종로, 일명 ‘성심당 거리’라고 불리는 은행동의 로쏘(주)성심당 본사 5층에서 진행됐다. 창업 69주년을 맞은 이 자리엔 성심당의 2세 경영자 임영진 대표와 그의 아들이자 3세 경영자인 임대혁 이사가 함께했다.

교황님의 빵이 된다는 것, 말로 다 못할 영광이었죠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 방한 당시, 식사빵으로 저희 성심당 빵이 쓰였어요. 직접 주문하신 건 아니었지만, 교황청에서 요청해 왔고, 그 빵을 맛있게 드셨다는 소식이 퍼졌죠.” 임영진 대표는 그날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교황님께서 소박하고 진심 어린 음식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그분께 믿음과 정성의 상징이 됐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죠. 더구나 오늘처럼 교황님의 서거 소식을 들은 날엔, 그때의 기억이 더 애뜻하게 다가옵니다.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던 분이 저희 빵을 드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영광이었고, 저희에겐 잊지 못할 자부심으로 남아 있습니다.”
임 대표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지금도 그분의 따뜻한 미소를 기억합니다. 부디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튀김소보로, 단지 팔기 위한 빵이 아닙니다
성심당의 간판 메뉴 ‘튀김소보로’는 하루 1만 개 이상 팔리는 압도적 인기 제품이다. 하지만 이 빵이 가진 무게는 단순한 판매 실적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성심당의 철학과 정체성이 고스란히 녹아든 하나의 상징이다.
“시대의 입맛은 변하지만, 우리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정직한 재료, 바삭한 식감, 그리고 한입에 되살아나는 기억—이 세 가지는 우리가 결코 타협하지 않는 원칙입니다.” 임영진 대표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이어 “튀김소보로는 이제 단순한 빵이 아니라, 대전을 대표하는 문화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겐 어린 시절의 추억이고, 누군가에겐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선물이죠. 그런 이야기를 품고 있기에, 우리는 매일 같은 정성으로 굽습니다.”라며 브랜드의 무게를 조용히 되새겼다.
사이버 공격? 오히려 신뢰를 다지는 계기였죠
지난해 5월, 성심당은 ‘해킹 피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실상은 고객 정보를 노린 피싱(Phishing) 시도였고, 개인정보 유출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성심당은 사건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즉각적으로 온라인 쇼핑몰을 임시 폐쇄한 후 보안 시스템을 전면 재정비했다.
임영진 대표는 이 상황을 단순한 위기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을 계기로 보안을 강화하고, 고객과의 신뢰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투명하게 대응하고, 실질적인 개선 조치를 취하는 것이야말로 성심당의 방식입니다.”
실제로 성심당은 이번 일을 통해 더 견고한 디지털 기반을 마련했고, 고객과의 신뢰를 오히려 더 굳건히 다지는 계기로 삼았다. 위기 앞에서도 원칙을 지킨다는 점에서, 성심당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성심당은 빵을 파는 기업이 아닙니다, 나눔을 실천하는 공동체입니다
성심당의 시작은 단순한 제과점의 개업이 아니었다. 한국전쟁의 참화가 남긴 폐허 속, 대전 성당에서 나눈 두 포대의 밀가루—그 작은 시작이 오늘날 성심당의 뿌리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빵 한 조각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삶’ 그 자체였고, 성심당은 그 생명을 나누는 것으로 존재를 증명해왔다.
이후로도 성심당은 ‘나눔’이라는 신앙적 철학을 실천하는 공동체로서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 지역 아동센터에 간식 빵을, 독거노인 복지시설엔 따뜻한 간식을, 그리고 때로는 재난이 닥친 지역에도 손수 만든 빵을 전하며, 이웃의 식탁을 채우는 일이야말로 성심당이 존재하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라고 믿는다.
“빵을 통한 상생, 그것이 아버지 세대부터 이어진 철학입니다. 전쟁 후 허기졌던 시절, 빵 한 조각은 생명이었으니까요.” 임영진 대표는 잠시 말을 멈추고, 기억 저편의 풍경을 꺼내듯 조용히 말했다.
성심당은 지금도 이 철학을 지켜가고 있다. 단순히 판매의 논리를 따르는 기업이 아니라, ‘공동체의 빵집’으로서 사람 사이를 잇고 온기를 전하는 문화적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잘 만든 빵 하나로도 세상은 따뜻해질 수 있다’는 믿음—그것이야말로 성심당을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다.
문화 브랜드로의 확장, 공간의 변화를 통해 실현됩니다
성심당은 이제 단순한 제과점이 아니다. ‘빵을 굽는 공간’을 넘어, ‘사람이 머무는 공간’, ‘추억이 시작되는 장소’로 자신을 재정의하고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샌드위치 정거장’ 같은 콘셉트 매장이다.
“우리는 단순히 빵을 파는 공간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편하게 들렀다 가고, 때론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안에서 작지만 따뜻한 기억을 남길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되길 바랐습니다.” 임영진 대표는 ‘공간의 온도’에 대해 강조하며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성심당이 단지 음식 브랜드가 아닌 ‘문화 브랜드’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 빵을 중심으로 한 감성, 디자인, 공간미학까지 고려하는 이 새로운 흐름은 대전이라는 지역을 넘어 전국, 더 나아가 글로벌 감성까지도 아우르는 준비의 일환이다.
신제품 개발의 영감은 늘 일상 속에서 옵니다
성심당의 제품은 단순한 기획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고객의 일상, 계절의 흐름, 사회적 트렌드에서 하나하나 감각적으로 길어올린다. 최근 큰 화제를 모은 ‘딸기시루’ 케이크도 그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요즘엔 단순히 맛있는 것보다, 감성을 자극하고 이야기를 담은 제품을 원하잖아요. 딸기시루도 그렇게 태어났어요. 겨울철의 사랑받는 과일인 딸기를 활용하되, 케이크 안에 포근함과 추억이 담기도록 기획했죠.”
임 대표는 “고객들이 선호하는 계절감 있는 재료, 사회적 트렌드, 그리고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를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단순한 식품이 아니라 하나의 ‘경험’이 되도록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예요.”라고 말했다.
결국 성심당은 매일 구워내는 빵 속에 사람의 일상과 정서를 담아낸다. 그 진심은, 고객의 입맛보다 더 깊은 마음에 먼저 닿는다.
긴 줄을 기다리는 고객들을 보며, 늘 초심을 생각합니다
대전역을 빠져나와 중앙로를 걷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멈추게 되는 진풍경이 있다. 바로 성심당 앞에 늘어선 긴 줄이다.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아무리 궂어도, 성심당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이 풍경은 이제 대전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임영진 대표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기다리는 분들을 보면 감사함보다 먼저 책임감이 밀려옵니다. 그렇게까지 기다리게 할 가치가 있는 빵을 굽고 있는가, 늘 스스로 묻습니다.”
그렇기에 성심당은 한결같은 세 가지 원칙을 지킨다. 최고의 재료, 최고의 정성, 그리고 최고의 청결. 대표는 “그 줄이 우리에게는 약속입니다. 고객의 시간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죠.”라고 말했다. 긴 줄은 단지 인기의 척도가 아니라, 성심당이 매일 초심을 되새기는 가장 큰 이유다.
왜 대전만? 그게 성심당의 철학입니다
요즘 같은 글로벌시대, 인기 있는 브랜드라면 자연스레 ‘해외 진출’이 화두에 오른다. 하지만 성심당의 3세 경영자 임대혁 이사는 이 질문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성심당은 대전에 뿌리를 둔 브랜드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건 단순한 확장이 아니라, 정체성과 진정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임 이사는 본 특파원의 딸과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 뉴욕에 살고 있는 딸이 “성심당 빵을 뉴욕에서도 먹고 싶다”고 하더라는 말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고향을 지키는 빵이 되고 싶어요. 누구든지 대전을 떠올릴 때, 그 기억 속에 성심당이 함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금의 시대 흐름을 읽고 있었다. “이제는 한국적인 것, 지역적인 것에 세계가 주목하는 시대잖아요. 오히려 그 고유함이 더 큰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K-컬처와 함께 성심당도 자연스럽게 세계로 향하는 날이 올 겁니다. 하지만 그 출발점은 언제나 대전이어야 하죠.”
대전이라는 도시와 함께 호흡하고, 성장하고, 뿌리내린다는 철학. 임대혁 이사는 이를 ‘경영 전략’이 아니라 ‘가업의 신념’이라 말한다. “대전을 지키는 빵이 되겠다”는 그 말은 단순한 의지 그 이상으로 느껴졌다. 그것은 성심당을 성심당답게 만드는 본질이기도 한 것 같다.
내 비전은, 다음 세대도 이 길을 자랑스럽게 걷게 하는 것
성심당의 3세 경영자 임대혁 이사는 스스로를 ‘새롭게 바꾸는 사람’이 아닌, ‘단단히 이어가는 사람’이라 소개했다. “저는 뭔가를 혁신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세대가 지켜온 철학과 신념을 변함없이 이어가기 위해 왔습니다.”
그에게 성심당은 단순한 제과점이 아니라, ‘믿음과 정성, 공동체의 가치를 품은 유산’이다. “미래는 분명히 대전에서 세계로 나아가겠지만, 그 중심은 언제나 성심에 있어야 합니다.” 그는 말한다.
임 이사는 기술이나 유행보다 중요한 것이 ‘정신의 계승’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다음 세대도 이 길을 자랑스럽게 걷도록, 오늘의 성심당을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고 있다. “제 역할은 큰 변화가 아닌, 깊은 뿌리를 굳건히 다지는 일입니다.”
인터뷰의 마지막, 임영진 대표와 임대혁 이사에게 미 중서부에 거주하는 교포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임 대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성심당은 단지 빵을 굽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앙과 나눔, 그리고 정직함의 정신을 굽습니다. 빵 하나에도 사람의 마음이 담겨야 한다는 믿음으로,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직접 대전에 찾아오셔서 그 마음까지 함께 나눠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어 임 이사는 “멀리 떨어진 시카고에서도 성심당을 기억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감격스럽습니다. 고향의 온기를 담은 빵이 누군가에겐 향수이고, 위로이고, 자부심일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우리는 오늘도 같은 온도로 굽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성심당의 빵은 그저 맛있는 음식을 넘어선다. 그것은 교황이 드셨던 한 조각의 빵이자,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의 생명을 지켰던 두 포대의 밀가루에서 비롯된 역사이며, 대전 시민에게는 매일 아침을 시작하게 하는 일상의 풍경이다.
이제 그 빵은 한국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대전 중구의 한 골목에서 시작된 이 빵집의 여정은, 오늘도 묵묵히 따뜻한 온기를 굽고 있다. 그리고 그 온기가, 시카고의 어느 교포 식탁 위에 닿기를, 성심당은 조용히 바라본다.

<이가희 시카고한국일보 한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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