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서 울려 퍼진 ‘하보우만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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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 감독이 지난달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하보우만의 약속'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교육적 역사 기록, 차세대 한인에게도 전달 필요해…”
“한인 단체들의 관심과 연대, 아쉬움으로 남아”

고국을 향한 마음이 스크린 위에 피어올랐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하보우만의 약속’이 5월 21일부터 22일까지 이틀간, 시카고한인문화원 비스코홀에서 총 4회에 걸쳐 상영됐다.
이번 상영회는 시카고한국일보와 WINTV 공동 주최로 마련됐으며, 궂은 날씨 속에서도 관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 작품은 이장호 감독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첫 다큐멘터리로,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 과정을 재조명했다.
특히 이번 상영은 2025년 이승만 대통령 탄생 15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열려 더욱 의미를 더했다.
상영 첫날인 21일, 중장년층은 물론 가족 단위의 관객들도 눈에 띄었다.
케네스 존스 한 씨는 87세 어머니 한영희 씨를 부축하며 손을 잡고 상영장을 찾았다. 그는 전날,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직접 시카고 한국일보 본사를 찾아 티켓을 구매했다.
케네스 씨는 “영어 자막은 없었지만, 어머니가 고국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리워하시는지 스크린을 통해 그대로 전해졌다”고 말했다.
이장호 감독과 중고교 학창 시절을 함께했다는 홍인기 씨는 “이번 영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적 기반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귀한 역사 자료를 모아 이처럼 의미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 감독은 역시 거장”이라고 평가했다. 부인 홍순원 씨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한국은 우리의 뿌리이기에 늘 관심을 갖고 있다”며 “영화를 통해 그동안 몰랐던 부분을 새롭게 보게 됐다”고 전했다.
관객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립과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과정, 두 인물이 역사 속에서 처음 만나 악수하는 장면 등에 몰입하며 조용한 감동을 나눴다. 악수 장면이 나올 때는 상영관 안에 잔잔한 탄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둘째 날 상영장을 찾은 김회숙 씨는 “1974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기에 영화 속 이야기들이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며 “재외 한인 간호사들이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한 장면에서는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고 말했다.
시카고한인간호사협회 전 회장인 그는 “초창기 미국에 와서 받은 월급을 가족들에게 부치며, 고국에 있는 가족을 위해 힘썼던 기억도 떠올랐다”고 회상했다. 또한 “당시 독일에 파견된 간호사나 광부들 못지않게, 미국에 온 한인들도 많은 달러를 한국으로 송금했다”며 “그 시절을 다시 되돌아보게 해준 영화였다”고 덧붙였다.
이민 후 꾸준히 학업을 이어온 그는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교 간호학사, 시카고 드폴 대학교 및 레이븐스우드 마취대학 석사를 취득했고, 노스웨스턴 대학교 파인버그 의대 노스웨스턴 메모리얼 병원 조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우리 같은 이민자들이 새로운 땅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놔주신 분이라 생각한다”며 영화 속 메시지에 공감했다.
영화는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다음 세대를 위한 문화적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전하며 깊은 울림을 남겼다. 상영이 끝난 후 관객들은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한 채 여운에 잠겼고, 이어지는 박수 속에 영화가 전한 메시지의 무게가 느껴졌다.
애국포럼 및 여성회 임원인 고미숙 씨는 “초등학생 때 미국으로 이민 와 한국 역사에 대한 기억이 희미했는데, 이번 다큐를 통해 많은 것을 새롭게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정치적인 색깔이 강할까 우려했지만, 실제로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돌아보고 팩트를 배우고 이해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이런 소중한 작품은 나와 같은 1.5세나 한인 2, 3세들에게도 꼭 보여줘야 할 콘텐츠인데, 한인회나 평통 등 주요 단체들의 참여가 저조했던 점은 아쉽다”며 “이럴 때일수록 한인 단체들이 힘을 모아 다음 세대를 위한 역사 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상영 환경에 대한 아쉬움도 일부 제기됐다. 시카고한인문화원 비스코홀의 스크린 높이가 낮아 앞좌석 관객에 가려 화면 하단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뒷좌석에 앉았던 김진수 씨(가명)는 “감동적인 장면에서 자막이나 중요한 장면이 가려져 몰입에 방해가 됐다”며 “스크린을 조금 더 높이는 등 관객을 고려한 상영 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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