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창간 ‘54년의 기록’
▶한인사회 발자취를 함께 걸어온 동행자
1970년대 초, 시카고는 한인들에게 낯설고도 차가운 도시였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이민자나 유학생으로 하나둘 모여들던 이들에게, 미국 중서부는 말 그대로 ‘무(無)에서 시작하는 땅’이었다. 하지만 이민 1세대는 좌절보다는 연대와 자립을 선택했다. 낯선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돕고 세우며, 시카고 한인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시카고한국일보’가 있었다.
시카고한국일보는 1971년 5월 19일, 클락 길(Clark St)에서 단 한 장짜리 소식지로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미 중서부 지역 최초의 한인 신문이었다.
창립자인 고 김용화 명예회장은 LA 한국일보에서 인쇄 기술을 배운 뒤 시카고로 돌아와, 직접 타자기로 기사를 작성하고 사진을 인화해 신문을 만들었다. 서울에서 에어메일로 받아온 소식을 가장 빠르게 전하고자 하는 사명감 하나로 버텼다.
그 시절, 신문은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을 넘어 고국에 대한 그리움, 미국 정착을 위한 팁, 교민 사회의 소식, 자녀 교육에 대한 희망 등을 담은 삶의 지침서였다.
한인타운, 신문 배달되는 곳에서 시작
신문이 배달되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교회와 상점이 생겨났다. 한국일보는 곧 삶의 지도였다.
시카고 코리아타운의 시작은 한국일보가 위치했던 클락 스트리트(Clark St) 주변의 작은 골목에서 비롯됐다. 아리랑 마켓을 시작으로, 점차 한국 식당과 서점, 여행사 등이 들어서며 한인 상권이 형성됐다. 그 거리를 누비며 매일 신문을 배달하던 시카고한국일보는, 커뮤니티의 맥박을 전하는 존재 그 자체였다.
1973년 독일 광부 출신 한인들이 결성한 ‘동우회’의 소식도 한국일보를 통해 알려졌다.
1980년대에 들어서며 로렌스 길(Lawrence Ave)을 중심으로 한인 상권이 확장되자, 시카고한국일보 역시 그 변화의 한복판인 켓지 길(Kedzie)에 자리했다. 교회 행사, 입시 정보, 광고, 동호회 소식 등 이민자들의 일상이 신문 속에 고스란히 담겼고, 한국일보는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주었다.
현 권대석 광고국장은 “당시 시카고한국일보의 영향력은 대단했다”며 “신문사가 있는 곳에 한인들과 상권이 모였다”고 전했다.
당시 이민자들에게 교회는 단순한 종교 공간을 넘어 삶의 중심지였다. 언어 장벽, 외로움, 실직과 같은 현실 앞에서 교회는 쉼터였고, 정보 교류와 만남의 장이었다. 그 교회 소식 역시 시카고한국일보를 통해 퍼져나갔다. 교회와 신문은 함께 이민자들의 삶을 지탱한 두 기둥이었다.
언론 경쟁, 함께 발전한 한인사회
1990년대 초, 한국일보에 입사한 현 이점봉 편집위원은 “중앙일보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누가 더 빠르고 정확한 기사를 쓰느냐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당시 ‘시카고한인기자협회(KAJA)’가 결성됐고, 한인 언론사 기자들이 돌아가며 회장을 맡았다. 1990년대 중반, 한국일보 취재부장이었던 이 편집위원이 기자협회 회장으로 선출되며, 언론인들 간의 연대도 강화됐다. 기자협회는 사진전을 비롯, 매년 축구대회를 개최해 언론사 가족들이 함께 어울리는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한인 신문사간의 경쟁은 언론의 전문성과 보도 속도, 그리고 신뢰도를 한층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경쟁 속에서도 친목과 협력이 있었기에 한인사회도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2000년대 들어 한인들의 교외(Suburb) 이주가 본격화되면서, 시카고 코리아타운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글렌뷰(Glenview), 노스브룩(Northbrook), 샴버그(Schaumburg), 나일스(Niles), 호프먼 에스테이츠(Hoffman Estates) 등지에 ‘한인타운’이 형성됐고, 시카고한국일보는 이에 발맞춰 배달망과 취재 범위를 확장해 나갔다.
TV와 종이신문의 만남, 새로운 미디어 길
2000년부터 시카고한국일보는 한동안 LA 미주본사의 체제로 운영됐지만, 2014년 8월, 김병구 전 회장에 의해 시카고 자본으로 다시 독립하면서 본래의 정체성을 회복했다. 이후 2022년 6월, WINTV · MCTV를 경영하던 김왕기 회장이 시카고한국일보를 인수하며, WIN 미디어 그룹(WIN Media Group)으로 도약했다.
WINTV · MCTV는 공중파 채널 24.5를 통해 24시간 방송을 송출하며, 자체 미주 뉴스와 생방송은 물론 한국의 MBC, MBN, CBS(기독교 방송)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WINTV · MCTV와 시카고한국일보의 융합은 ‘듣고, 보고, 읽는’ 한인 최대 미디어 플랫폼으로 성장해왔다.
현재 시카고한국일보는 미 중서부 13개 주를 아우르며 주 5회 종이신문을 발행하고 있으며, 우편 배달은 물론 웹사이트, 전자신문, SNS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한인 사회와 주 7일 내내 소통하고 있다.
김왕기 회장은 “시대 변화에 발맞춰 시카고한국일보는 다양한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히며, 인쇄 방식의 디지털 전환과 전면 칼라 인쇄 도입으로 신문의 품질을 한층 높였다고 말했다.
또한 식품점, 식당 등 한인사회 곳곳에 무료 가판대를 설치해, 누구나 부담 없이 신문을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에는 A섹션의 미주소식, B섹션의 한국 소식 외에도 C섹션의 구성을 전면 개편하여, 기존의 틀을 벗고 시카고 중심의 로컬 뉴스와 실용 정보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20~40대 젊은 세대를 위한 다양한 이슈를 다루며, 독자층 확대에도 힘쓰고 있다. 더불어 매주 토요일에는 주간 매거진 스타일의 별도 섹션인 ‘주간한국’을 발행해 주말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본사 사옥은 창간 당시 클락 길을 시작으로, 시카고 알바니팍 지역의 켓지 길(Kedzie Ave), 링컨우드(Lincolnwood) 지역의 디반 길(Devon Ave)을 거쳐, 현재의 밀워키 길(Milwaukee Ave)에 이르렀다. 그 여정만큼이나 시카고 한인사회도 변화를 거듭했지만, 시카고한국일보의 사명은 변하지 않았다.
타자기로 기사를 치고 종이를 오려 붙여 편집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전자신문을 읽는 시대다. 전달 방식은 변했지만 ‘한인과 함께하는 신문’이라는 본질은 여전히 같다.
김왕기 회장은 변화와 도약에 대한 다짐을 이렇게 밝혔다.
“2022년 6월1일에 시카고한국일보를 인수한지 정확히 3년이 지났습니다. 54주년을 맞이한 시카고한국일보는 여러가지 변화와 어려운 환경 가운데에도 현실에 안주하지않고, 시대에 맞는 변화와 독자의 눈높이에 맞는 신문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윤연주 기자>
[시카고 한인사회 선도언론 시카고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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