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 가까이 시카고 개발 논의에 등장했던 ‘크로스타운 고속도로(Crosstown Expressway)’가 주민 반대에 막혀 사라진 지 45년 만에, 새롭게 태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버크타운(Bucktown)에서 시카고 식물원까지 잇는 장거리 자전거길로의 변신이다.
1909년, 시카고 도시계획의 아버지로 불리는 다니엘 번햄이 최초 구상한 크로스타운 고속도로는 1960년대 리처드 J. 데일리 전 시장 재임 시절 본격 추진됐다. 케네디-에덴스 고속도로 분기점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아이젠하워 고속도로를 거쳐 75번 길까지 연결되고, 이후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댄라이언 고속도로까지 연결하는 22마일 규모의 야심찬 계획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일리노이 교통부(IDOT)는 이 고속도로가 건설될 경우 3만3천여 명의 주민과 2천여 개의 사업장이 철거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규모 반대 운동이 일어났고, 결국 1979년 프로젝트는 백지화됐다. 당시 확보된 20억 달러 이상의 연방예산은 블루라인 오헤어 연장 등을 포함한 15개 시카고 지역 교통 프로젝트로 재배정됐다.
그 무산된 고속도로 부지가 이제는 시민 생활과 연결성을 높이는 자전거길로 거듭나려는 시도를 맞고 있다. 주민 모임인 ‘크로스타운 트레일 친구들(Friends of the Crosstown Trail)’은 올해 초 결성돼, 과거 화물열차용으로 사용되던 유니언 퍼시픽 선로를 자전거 전용도로로 바꾸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 트레일은 북쪽 몬트로즈 애비뉴와 녹스 애비뉴에서 시작해 남쪽 코틀랜드 스트리트와 킬번 애비뉴 인근까지 3.2마일을 잇는다. 노선은 켄턴 애비뉴를 따라 이어지는 고가 철도 제방을 따라가며, 총 10개의 교량을 포함하고 있다.
경유 지역은 올드 어빙 파크, 어빙 파크, 포티지 파크, 킬번 파크, 벨몬트 크레이긴, 그리고 허모사까지 확장되며, 이미 운영 중인 ‘더 606 트레일’과 노스 브랜치 트레일, 그리고 향후 예정된 웨버 스퍼 트레일과도 연결된다.
‘크로스타운 트레일 친구들’의 조지 위치첵 공동 창립자는 “이 트레일의 진정한 가치는 연결성에 있다”며, “버크타운에서 식물원까지, 차와 거의 마주치지 않고 35마일 이상 이어지는 자전거길이 되는 셈”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 부지는 과거 고속도로 추진 당시에도 치열한 주민 저항의 상징이었다. 2007년 WBEZ 보도에 따르면, 당시 시 공공사업국장이 주민과의 면담을 거부하자, 주민들은 그의 얼굴을 담은 ‘수배 전단’을 수백 장 인쇄해 시청에 뿌리기도 했다. 또 2021년 Streetsblog 보도에 따르면, “질문을 회피한다(ducking)”는 이유로 주민들이 오리를 시위에 데려간 사례도 있다.
고속도로 건설 계획 폐기 이후에도 몇 차례 정치권에서 해당 부지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무산됐다. 2007년에는 마이클 매디건 전 일리노이주 하원의장이 유료도로 방식으로의 재추진을 제안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또다른 공동 창립자 짐 프랭키는 “당시에도 지역사회가 고속도로를 막았다”며, “이제는 지역사회가 자전거길을 탄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로스타운 트레일 친구들’은 이달 초 상징적인 오리 자전거 로고와 함께 웹사이트 및 청원서를 공개했다. 단체는 앞으로 1년간 공청회와 주민 의견 수렴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첫 커뮤니티 미팅은 지난달 올드 어빙 파크 협회와 함께 열었으며, 올여름과 가을에는 추가 지역 커뮤니티 미팅도 예정돼 있다.
프랭키와 위치첵은 원래 ‘더 606’ 근처에 살다가 현재는 올드 어빙 파크로 이주했다. ‘더 606’은 2015년 완공된 2.7마일 길이의 다목적 트레일로, 위커 파크, 버크타운, 훔볼트 파크, 로건 스퀘어를 연결하며 시카고 도시 인프라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심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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