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순서(예정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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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로뎀교회 담임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예정하시지만, 동시에 사람은 자유의지를 갖는다. 자유의지란 자신의 능력 안에서 자기 선택에 의해서 의사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린 명령문으로 가득한데, 이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음을 전제한다. 사람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성경의 이러한 명령문은 무의미할 것이다.

하나님은 광야 생활하는 이스라엘 민족과 그들의 후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배워서 그 명령에 순종하라고 명령하신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 28:1; cf. 신 39:19).

여호수아는 사명을 마치고 죽기 전 출애굽 2세에게 여호와와 우상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명령한다. 선택하라는 명령은 분명 자유의지가 있음을 전제한다. 자유의지가 없는 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수 24:15).

성경은 하나님을 찾으라고 자주 명령하는데, 이 명령 역시 선택하라는 의미로 인간의 자유의지와 관련을 맺는다. “. . .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대하 15:2).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구약의 선지자들은 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회개하기를 촉구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악과 불순종에 머무는 길과 회개하는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 1:16-17. cf. 겔 18:30; 33:18-20; 욘3:10).

하나님은 심지어 악인의 고난조차도 본질상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은 악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기에 선을 선택하라고 명령하신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1-13; cf. 겔 33:11).

신약 성경으로 와서,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천국 백성이 된다고 가르친다. 순종이라는 행위는 사람의 선택으로 자유의지를 전제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사도 바울도 그의 서신들에서 선한 행위를 선택하라고 권면한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롬 2:6-8; cf. 갈 6:7).

이렇게 성경의 명령들은 사람에게 자유의지가 있음을 전제한다. 자유의지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길을 선택하라고 한다. 사람의 모든 행위가 과거에 미리 프로그램화되어 있다면 이런 명령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성경 속의 말씀은 결국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