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문화산책] 예수 그리스도와 인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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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

인자 예수가 행색이 촌스럽고 억센 어부출신의 갈릴리인 여남은 명을 이끌고서 투박한 억양의 아람어로 천국복음을 전파하던 A.D. 30년경의 유대나라는 우리가 아는 대로 정치적, 경제적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격동기의 시기였다. 로마의 압제 하에서 과중한 세금징수에 쪼들려야했던 유대민중들은 다시금 성전세니 추수곡물세니 하는 명목으로 예루살렘 권력층으로부터 부과되는  종교세로 이중과세의 부담을 힘겹게 걸머지다보니 일상생활의 비참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로마의 앞잡이로 밖에는 볼 수 없는 세리들의 횡포와 부정부패는 날로 심화되어 동족을 등쳐먹기에 혈안이되어있었으며, 예루살렘에는 요세푸스(Flavius Josephus)의 추산에 의하면 약 십만 여명의 사제들이 득실거렸다는데 이들의 과잉 수효로 인하여  년 5 주 정도의 사제 의무를 순번으로 수행하고 나서는 일 년 내내 빈둥거리며 십분의 일 세와 제물로 바친 곡식의 맏물과 포도주, 올리브기름, 그리고 짐승 어깨부분의 살찐 고기들을 포식했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제들은 직업병으로 얻은 비만증에 시달려야 할 만큼 사치스런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니 물가는 날로 치솟고 인심은 흉흉하며, 도적과 강도들이 도처에 날뛰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목마저 강도의 위협으로 대낮에도 사람들이 떼를 지어 가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의 험악한 상태였다. 또한 내일의 생존마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시대였던 만큼 유대민중들은 자기들 세대야말로 메시야가 도둑같이 출현할 종말적 시대로 여겼던 것은 당연하며 길거리에 깔린 돌멩이라도 떡으로 만들 기적을 애타게 갈구하던  그네들의 고초와 심정을 우리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처지의 유대군중에게 예수는 ‘달란트의 비유’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주인이 먼 길을 떠나면서 심복 하인들에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의 맡기고 떠났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 돈을 곧바로 활용하여 각기 투자액의 곱절을 벌어 들였기 때문에 나중에 주인과 셈을 치를 때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찬을 받았지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에 돈을 그냥  묻어두었다가 반납했기 때문에 주인의 분노를 사 결국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질책과 함께 밖으로 쫓겨난다는 것이 달란트 비유의 줄거리다. 그러나 우리는 ‘게으른 종’의 입장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주인으로부터 받은 모욕적인 차별대우에 아무런 불평도, 자기 동료에 대한 질시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실 그가 취한 재산 관리는 당시의 불안정한 사회 형편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가장 합당하고 안전한 방법이었다. 또한 그가 보는 주인의 성품에 대한 안목도 매우 날카롭고 솔직하다. 그의 주인에 대한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무서운 분”이란 평은 유대인 상술을 정통으로 꼬집은, 참으로 명쾌한 표현이다.

‘달란트의 비유’는 또한 플롯의 구성에 있어서도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가진 사람이 일률적으로 투자액의 곱절을 남김으로써 극적 효과를 잃는다. 이 비유가 좀 더 문학적인 감동과 리얼리스틱한 호소력을 획득하려면 두 달란트를 가진 사람은 파산을 했어야 했다. 그리하여 주인과 결산을 치룰 때 비록 원금마저 날렸지만 돈을 늘려보려고 애썼던 애초의 노고만은 인정을 받아 주인의 격려와 함께 또 다른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 않았을 가. 그러나 달란트의 비유는 한결 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돈을 굴렸던 사람들은 투자액의 곱절을 모두 벌어들인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니까 달란트의 비유는 어렵고 불확실하한 경제 여건 속에서도 오히려 적극적으로 투자를 늘리고 좀 더 깊은 곳에 그물을 과감히 던져보라는, 파격적인 발상의 전환(Paradigm Shift)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전해 주는 것 같다. 물론 불황의 늪을 벗어나려면 ‘배암의 지혜’와 ‘망대를 짓는 자의 타산’이 필요할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겠다. 그러나 달란트의 비유는 단순히 물질적인 번영만을 목적으로 한 기복적 교훈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할 때 실패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달란트의 비유가 우리에게 전해 주고자하는 참 교훈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복은 하나님의 편에서는 ‘예정’이었지만 이스라엘민족의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키가 장대 같은 거주민들의 견고한 성읍을 쳐부수고 쟁취하여야만 할 사생결단의 ‘선택’이었다. 그러니까 한 달란트 맡았던 종의 과오는, 그에게 모처럼 주어진 기회와 역량을 성심껏 활용할 것을 저버리고 현실의 어려움을 핑계로 자신의 패각(貝殼) 속으로 움츠려 피신, 포기하였다는데 있다. 신앙인의 인생 여정(旅程)은 거센 역풍을 되받아넘기며 밀려오는 파도를 헤집고 나가야되는 몸 전체로 분투하는 역동적인 삶이다. 그리하여 도가니 속에서 결정된 환희를 맛본다. 그리고 달란트의 비유는 예수가 단순히 A.D. 30년대의 유대 군중에게 들려준 교훈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들에게도 들려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성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