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문화산책] 이대(梨大) 사위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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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시카고)

문필 생활을 하면서 여러 종류의 원고 청탁도 적잖이 받아왔지만, 언젠가 이곳 시카고 지역 이대동창 회장으로부터 받은 부탁은 좀 특이한 것이었다. “이대 사위로서의 글”을 한 편 써달라는 것이었다. 집 사람이 이대 국문과 출신이니 내가 이화의 사위가 된다는 말이겠는데, 그 무수한 ‘사위’들 중에서 별 볼일 없는 내가, 더구나 딸 셋 시집보내면 집안 기둥이 빠진다던데 매년 수많은 딸들을 시집보내고 앞으로도 혼기에 찬 딸들이 수두룩하니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판인데, “내가 바로 배꽃집 사위요”라고 아무리 목청 높여 본다한들 씨암탉 국물은 고사하고 ‘장모님’께서도 이젠 100세가 훨씬 넘으셨을 터이니 명색이 사위인 나를 제대로 알아보실 런지조차가 의문이다. 하기야 어느새 반세기 훨씬 전의 일이긴 하지만, 사실 대학시절부터 ‘배꽃 가시나’들과는 인연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원까지 내가 신촌 버스를 무려 6년간을 타고 다니면서 부지런히 가방도 받아 주었고, ‘윙크’도 해 보았고, 지금은 이름마저도 다 잊어버렸지만 이대 입구의 지하 다방하며 근처의 빵집들도 자주 들랑거려 보았지마는 특기할만한 수확(?)은 끝내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아마도 내가 ‘오 척 단구’라는 결정적인 약점 때문에 아무리 재주를 부려본다 한들 결국 재미는 함께 따라왔던  키 큰 녀석들이 다 보고 나는 언제나 외톨이로 떨어져 어둑한 뮤직홀에나 처박혀 오만상을 짓고서 쇼팽의 ‘이별’ 곡이나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듣던 게 고작이었다.(그래서 나는 나에게 시집을 와 준, 그리고 미국까지 맨 손으로 따라와 준 내 아내 ‘큰 손’(집사람의 이름이 장영자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당시에 내 단골 음악감상실은 명동 입구 ‘명동극장’ 건너 편 골목길 2층에 있던 S.S.뮤직홀이었다. 대학생들에게 데이트 장소로서 인기 있던 음악감상실은, 또한 종로 2가의 ‘르네상스’와 명동 지하실에 있던 ‘돌체’, 그리고 빵집 ‘고려당’ ‘뉴욕제과’ 건너 편 YMCA 건물 뒷마당에 있던 ‘디쉐네’였다.

각설(却說)하고, 사실은 사위된 입장에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진작 받고서 내 딴엔 꽤나 고심했었다. 도대체 글 쓸 건더기(글감)가 없어서였는데, 솟아 날 구멍이 있다고 머리를 굴려보노라니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에 내가 한국의 어느 여성 잡지에 ‘아름다운 여인들’이란 제목으로 몇 차례 걸쳐 연재했던 감상적인 잡문 중에서, 마침 이대 기숙사를 난생 처음 방문했던, 그러니까 처가 집 처녀 방을 기웃거려보았던 경험을 적어놓은 글이 있었다는 게 문득 생각이 나서, 시답잖은 글이긴 하지만  그때 그 시절을 한 번 추억해 본다는 심정에서 그대로 여기에 실린다.

“지방엘 내려갔다 올라오는 편에 서울에 있는 여식(女息)에게 학비금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부득이 어느 여자 대학의 기숙사를 찾아 갔던 일이 있습니다. 초저녁 무렵이었지만 잔뜩 찌푸린 날씨 관계로 사방은 벌써부터 어둑해 오고 있었습니다. 대학가의 서점과 간이식당과 찻집과 그리고 즐비하게 늘어선 양장점을 지나 학교의 정문에 당도하였을 때에는 끝내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야 말았습니다. 모처럼 여학교엘 가 본다는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교문 철창 사이로 보이는 하학 후의 교정(校庭)안 풍경은, 여간 쓸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늦도록 남아서 연습하는 학생들의 피아노와 노래 소리만이 한가로이 귓전에 스쳐올 뿐 컴컴한 숲 사이로 우뚝 우뚝 솟아있는 텅 빈 석조 건물들의 어슴푸레한 모습은 흡사 파장(罷場) 후의 기분과도 같은 적막감을 짙게 던져주고 있었습니다. 수위실에서 대충 가리켜주는 곳을 짐작으로 하여 나는 다시금 기숙사를 찾아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 습니다. 이따금 마주치는 여대생들의 눈길을 의식하며 드넓고 낯선 캠퍼스 안을  부슬비를 맞으며 혼자 거니노라니 자연 겸연쩍은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렇게 속으로 어색한 기분을 달래 가면서 발길을 막 재촉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누군가 등 뒤로 쫒아 오는 듯싶더니만 우산을 펴든 차림새로 보아 기숙생인 듯싶은 한 아가씨가 미소를 지으며 옆으로 다가서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저만치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고 있는 나를 보자 그녀는 일부러 급한 걸음걸이로 쫒아온 모양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뜻밖에 그 여대생의 호의(好意)로 별로 비를 맞지 않은 채 기숙사까지 쉽사리 찾아 갈 수가 있었습니다.

처음 짐작대로 그녀는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시종 명랑한 표정으로 친절히 대해 주었습니다. 실상 기숙사까지는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함께 우산을 받으며 걷는 도중 학교 건물들의 이야기며 또는 그녀가 간간이 웅얼거리는 콧노래 소리를 곁에서 가만히 듣다보니 어느 사인엔가 정다운 친구와 함께 거닐고 있는 듯싶은, 꼭 그러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숙사에 도착한 뒤에도 그녀는 기꺼이 몇 가지 친절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즉 내가 돈을 전달하려는 학생을 찾는 일과 하필이면 그녀가 부재(不在)중임을 알게 되자, 같은 방에 기숙하고 있는 딴 학우를 대신 불러내어 돈을 전할 수 있게 주선을 해주고는 갸우뚱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이층 로비로 총총히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고맙다는 인사말 한번 제대로 못하고 어색하게 기숙사를 물러나오고 말았지만, 비를 맞으면서도 마음은 모처럼 그지없이 즐겁고 가벼워만 지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