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문화산책] 뜨거운 것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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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

연인(戀人)들끼리 초콜릿과 붉은 장미꽃을 주고받는 발렌타인 데이 기원이 3세기경 로마 신부 성 발렌티누스 순교 날짜를 기념하기 위해 생겨났다는 불확실한 설도 있고, ‘캔터베리 이야기’의 작가 초서(Chaucer)는 2월 14일을 새의 암, 수컷이 서로 짝짓기를 하는 연정(戀情)의 날로, 셰익스피어는 ‘햄릿’에서 비운의 여주인공 오필리아로 하여금 발렌타인 데이에 처녀들이 아침 일찍 창문으로 처음 보게되는 남자나 그 비슷하게 생긴 남자와 일년 내에 결혼하게 된다는 당시의 속설을 암시하는 노래를 부르게 하고 있지만, 하여튼 교황 Gelasius가 A. D. 498년에 2월 14일을 St. Valentine’s Day로 선포했다니까 꽤나 오래된 연조를 갖고 있는 축제일이라 하겠다. 영국에서는 18세기 낭만주의시대에 손수 친필로 쓴 사랑의 메시지가 담긴 카드를 만들어서 이 날 교환하는 것이 유행이었고, 미국에서는 최초로 발렌타인 카드가 Esther Howland에 의해 고안 인쇄되어 상품화 된 1840년 이래 매년 일 억 장 이상의  카드가 팔리고 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75년 전인 1929년은, 인류 최초로 파리에서 뉴욕으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비행기록을 세운 역사적 해이고 미국에서는 디즈니의 Micky Mouse가 스크린에 처음 소개되고 경제가 호황을 한껏 이루는 듯싶다가 시월에 갑작스런 증권시장 붕괴로 대공황을 맞게되는 을씨년스런 해이기도한데, 특히 2월 14일 시카고에서는 아침 10시 30분 경 2122 N. Clark가(街)의 한 창고 건물에서 울려 퍼진 150여 발의 기관총 난사(亂射) 총성으로 결국 시카고를 갱들의 암투가 난무하는 악명 높은 암흑가의 도시로 전 세계에 오명(汚名)을 남기게 되는 ‘The St. Valentine’s Day Massacre’이라는 살인사건이 발생한 날이기도 하다. 시카고 남부와 서쪽을 장악하고 있던 이태리 마피아조직 Al Capone과 시카고 북쪽 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아일리시 계통의 Bugs Moran파간의 세력 확장 다툼으로 경찰 복장을 한 알 카포네 부하들이 상대편 폭력 조직원 7명을 검문한다는 명목으로 차고안 벽 쪽 에 등 돌려 세워 놓고 기관총으로 난사 살해한 사건이다. 이 참혹한 범죄 행위를 배후에서 주도한 알 카포네는 사건 당일 플로리다 마이애미 저택에 있었기 때문에 심증은 있으나 확증이 없어 검거되지는 않으나 2년 후 탈세 혐의로 구속되어 11년 구형을 받고 종국엔 샌프란시스코 Alcatraz 감옥에 7년 동안 수감되어 있다가 매독 증세의 심화로 인한 정신 착란증으로 석방 치료를 받다가 48세의 나이로 죽는다. 이 사건을 주제로 한 코미디 영화가 바로 마린 몬로와 토니 커티스와 잭 레몬이 여장(女裝)하고 나오는 Billy Wilder의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 1959)라는, 옛날에 한국에서도 상연된 바 있는 흑백 영화이다.

1920년대 미국 금주(禁酒)법 시대에 주로 밀주(bootleg)와 도박장과 매춘으로 카포네가 1927년 한해에 벌어드린 검은 돈만도 무려 1억 5백만 달러로 당시 사법 당국은 추산하고 있을 정도니 오늘의 환률 가치로 따져보면 실로 엄청난 규모라 하겠다. 알 카포네는 시카고 남서쪽 Mt. Carmel 묘지에 공교롭게도 밸런타인데이에 살해된 갱들과 같은 묘역(墓域)에 묻혀 있는데, 그의 묘비에는 “나의 예수여 자비를”(My Jesus Mercy)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