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문화산책] 콜베(Kolbe)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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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

나치 잔악(殘惡) 사의 현장인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둘러보던 날은 잔뜩 찌푸린 날씨에 빗방울마저 간간이 흩날리는 매우 음산한 분위기를 풍겨주고 있었다. 원래 아우슈비츠는 체코 국경 지대에 근접한, 지하 소금 광산으로 유명한 Krakow에서 남서 쪽 30마일 거리에 있던 촌읍(村邑)이었는데, 나치 정권이  동유럽의 유태인들과 집시, 정치범들을 집단 수용하고, 1941년 6월부터는 4개의 대형 학살 가스실을 만들어 집단 살해한 만행이 나중에 알려짐으로서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영화 ’Schindler’s List’에서 화물열차로  유태인들이 수용소 안까지 실려 오던 곳은 아우슈비츠에서 3마일 떨어진 ‘브제징카’(Birkenau)로, 당시에는 53만평 대지에 300개의 숙소를 지어 10만 명을 수용했다는데 지금은 45동만 남아있고 현재 이 두 집단 수용소는 ‘Auschwitz Birkenau Concentration Camp’로 명명되어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 등록되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건물은 ‘홀로코스트 박물관’으로 개장되어 일 년에 무려 60만 명에 달하는 방문객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건물 안 곳곳엔 잔혹했던 그 당시의 흔적과 원한이 생생히 남아있고 배어있었는데, 참혹했던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는 나의 심정은 매우 무겁고 침통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을 시종 괴롭혔던 것은 인류사에서의 이러한 참극이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도 있고, 앞으로도 이보다 더 잔혹한 만행이 얼마든지 지구촌에서 계속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사실 북한에서는 나치보다도 더 잔인하게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내내 답답하고 침울한 감정에서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가이드로부터 폴란드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 Maximilian Kolbe 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다. 암흑 속에서 한 줄기 광명을 보는 순간이었다. 한 건물에서 탈주자가 생기면 무작위로 열 명을 뽑아 굶겨 죽이는 형벌이 가해졌는데, 1941년 8월 14일 콜베 신부가 수용되어있던 숙소에서  탈주자가 생겨 결국 열 명이 뽑혀 굶겨 죽게 되었는데, 그중 한 명이 기아감방으로 끌려가면서 아내와 자식들을 다시는 보지 못하고 죽게 됐다고 울부짖자, 콜베 신부가 자기는 처나 자식들이 없으니 대신 가게 해 달라고 자원하여 감방에 갇힌 지 14일 만에 아사(餓死)했는데 그때 콜베 신부의 나이는 47세였다고 한다. 콜베 신부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수용소 안에 퍼져 비탄과 절망의 수렁에 빠졌던 많은 수용자들에게 소망과 삶에의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콜베 신부가 갇혔던 감방은 화환과 촛불이 켜져 있고 1981년 순교자 성인으로 시성(諡聖)되었다. 콜베 신부에 의해 목숨을 건진 당사자는 95세까지 살았는데, 그는 53년 동안 매년 8월 14일이 되면 아우슈비츠에 가서 콜베 신부를 추모했다고 한다.

아우슈비츠 박물관 본관 정문 벽에는 George Santayana의 다음 같은 말이 적혀있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는 다시금 그와 같은 역사를 살게끔 되어있다.”(The one who does not remember history is bound to live through it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