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문화산책] 황금 소로(小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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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시카고)

유서 깊은 문화예술의 도시 프라하에는 워낙 볼거리가 많지만 아무래도 백미(白眉)는 몰다우 강을 가로지른 ‘칼레르 다리’(Charles Bridge)와 ‘황금소로’(Golden Lane)가 아닐 가 싶다. 체코의 왕이며 로마 황제였던 차알즈 4세의 명에 의해 1357년에 건축을 시작 1406년에 완공한 길이 520미터, 폭 10미터의 이 석교(石橋)는 워낙 견고하게 축조되었기 때문에 몇백년 동안 홍수로 강이 범람하던 잦은 수마(水魔)에도 휩쓸리지 않고 오늘까지 건재한 데 17세기 다리 양옆에 세워진 30개의 역사적인 인물들의 바로크 풍 조상(彫像)들은 교량의 고풍스런 분위기를 한껏 풍겨 준다. 차량 통행이 금지된  이 다리 위에선 거리 악사들의 연주 공연도 벌어지고, 파리의 몽마르뜨 거리처럼 화가들이 행인들의 초상화도 그려주고 있어  항상 외국관광객들로 붐비는 시끌 법석한 명소이기도하다.

시가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프라하 성벽 사잇길 한 편에 연이어 붙은 성냥갑 같은 집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상가 거리가 바로 유명한 ‘황금소로’이다. 특히 22 번지 푸른 페인트 색 집이 바로 Franz Kafka(1883-1924)가 1916-17년 사이에 잠시 머물던 집이었는데, 지금은 카프카 기념관으로 되어 있지만 비좁은 집안엘 들어가 보면 단지 자질구레한 기념품과 카프카 소설집 몇 권만이 판매대 위에 놓여있을 뿐이어서 방문객들을 당혹하게 만든다. 원래 이 지역은 Rudolf 2세의 왕궁 수비병 24명이 거쳐하던 숙소였는데, 17 세기경엔 연금술사들이 들어와 살며 금세공(金細工)을 하게 되면서 ‘황금소로’(Goldmaker’s Alley)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나중엔 빈민가로 전락되었다. 이 집은 카프카의 누이 Ottla의 소유로, 그녀가 가끔 연인과의 밀회 장소로 쓰였던 집을 카프카가 부친과의 반목으로 가출하여 일년 남짓 거처했는데, 여기 머무는 동안 그는 소설 ‘성(城)’을 구상했다고 한다. 또한 체코 유일의 1984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 시인 Jaroslav Seifert(1901-1986)도 한 때 이곳 ‘황금소로’에 살았다고 전해진다.

체코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카프카는 어린 시절 매우 소심하고, 부모에게 순종적이고, 종교적인 죄책감에 시달리는 내성적 성격이기는 했지만, 법대생 시절엔 권위주의적인 학교체제와 비인간적인 교과과정에 반기를 들고 공공연히 스스로 사회주의자와 무신론자임을 선포하였다. 1906년 23세에 그는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부친의 권유로 취미에 맞지 않는 보험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점차 부친과의 적대관계는(father-son antagonism) 심화되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 ‘변신(變身)’에서 어느 날 아침 한 마리의 흉측한 곤충으로 변해버린 소설의 주인공 Gregor이 결국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등이 맞아 죽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심적 상태를 암시한다.

카프카는 작가로 전념하기 위해 1923년 베를린으로 갔지만, 애석하게도 폐병이 도져 다음 해에 41세로 사망한다. 그가 사랑하던 두 누이 Ottla와 Marie는 체코가 나치에 점령당한 후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처형당했는데, 흰 페인트로 “Marie Kafka”라는 이름이  적힌 여행 가방이 수용소 박물관 가방 무더기 진열장 속에 있다던데, 나중에 알았기 때문에 직접 확인해 보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