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화와 소통 8: 소통과 시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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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목사(다솜교회 담임)

한 집사님이 자기가 케냐에 단기 선교를 갔을 때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단기 선교 기간 중에 유치원을 개교하는 날이 있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의 지원을 받아 케냐 오지에 유치원을 설립한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집사님은 개교일 약 일주일 전에 케냐의 한 간판에 유치원의 간판을 주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개교하는 당일 오전에 간판을 픽업하러 간판가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당황스럽게도 간판가게 주인 아저씨는 그제서야 간판의 첫 글자를 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행사에 맞추어 간판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을 안 집사님은, ‘행사가 불과 한 두시간도 남아있지 않은데, 이제서 첫 글자를 쓰면 어떻게 하느냐’고 화를 냈답니다. 그러자 그 간판가게 주인 아저씨는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지금 일을 하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되물으며 황당해 하더라는 것입니다.

시간에 대한 생각은 문화마다 다르고, 시간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소통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시간에 대한 개념 중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은 직선적인 시간관과 원형적인 시간관입니다. 직선적인 시간관은 미국인들과 같이 서구사람들에게서 많은 발견됩니다. 미국 사람들은 시간은 하나의 방향으로 전진해 간다고 믿으며, 시간은 지나가면 없어지기에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시간은 돈”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정확한 시간 계획에 따라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또 정해진 시간 내에 완벽하게 일을 완성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약속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5분 이상 기다리는 것은 자기의 소중한 시간의 낭비라고 생각해서 불쾌감을 느끼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반면 원형적인 시간관을 가진 사람들은 전혀 생각이 다릅니다. 그들은 시간은 돌고 또 다시 돈다고 믿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시간의 서로 다른 측면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정확하게 시간을 지키는 것 보다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친구를 만나서 대화를 하고 있다면, 그 일에 최선을 다해 집중합니다. 길에서 친구를 만나 대화를 시작하게 되면 가족의 안부로부터 시작해서 사돈의 팔촌 그리고 집에서 키우는 양과 소의 안부를 다 물어야 인사가 끝납니다. 원형적인 시간관은 가진 사람들은 기다리는 일을 별로 어렵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두 시간 기다리는 것은 늘 있는 일입니다. 일보다는 관계가 중요하고, 일은 언젠가 완성하면 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문제는 서로 다른 시간관이 소통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케냐로 선교 가셨던 집사님이 간판 가게 주인에게 화를 냈듯이 말입니다. 직선적인 시간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원형적인 시간관을 가진 사람들은 게으르고 책임감이 결여되었으며 신뢰하지 못할 사람이라는 판단을 하기 쉽습니다. 반면 원형적인 시간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직선적인 시간관을 가진 사람들은 편협하고, 이기적이며, 예의가 없으며, 세상을 보는 시각이 편협되고,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밝은 사람들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이런 오해는 효과적인 소통의 큰 방해물이 됩니다.

우리 한인 이민자들은 서구의 시간 개념에 훈련되어 시간을 잘 지키고, 계획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내면의 깊은 곳에서는 아주 늦은 밤시간까지 라도 서로의 이야기를 터놓고 대화하고, 아픔을 당한 사람 옆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어 주는 것을 귀하게 생각하는 전통적 문화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시간에 대한 생각을 조금만 넓히고 타인의 다름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고,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짜증과 답답함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소통의 능력을 향상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