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ommon Ground, 시카고평통 임기를 마치며

1974

김영언(18기 시카고평통 간사)

 

2년간의 18기 시카고 평통 간사 임기를 마치면서 해방의 홀가분함이 있습니다만, 사실 마음이 그리 편하지는 않습니다. 이번 여름에 한국방문하면서 느낀 것이 미주사회에서 보는 것보다 실제 한국사회의 국론이 더 심하게 분열되어 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20여년 진보와 보수 간에 정권이 오가는 민주국가의 실험을 하고 있는 동안 세대를 두고 극명히 갈리는 보수와 진보간의 갈등은 5년 대통령 임기를 거듭하면서 점점 깊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진보정부가 강경한 반일 정책을 취하면 이제 보수는 진보에 대한 더 큰 반감 때문에 평소 지론과 달리 친일을 택하게 된다든지 하는 왜곡된 현실을 봅니다.

한국방문중 70세 전후의 아버지, 장인어른, 그리고 대학스승님 등 어른분들과 제법 많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사에 유례를 찾아볼수 없도록 불과 몇십년만에 농경사회에서 첨단선진국가로 변모된 것은 전적으로 이세대 덕분입니다. 불과 7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에 국력이 밀리던 나라를 바로 이세대의 전력투구로 인해 국력이 수십배 차이나도록 대한민국을 발전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경제적으로 상대가 안되니, 형처럼 양보하고 북한을 발전시켜서 언젠가는 통일이 되도록 해보자는 문재인정부 내지 40대의 주된 정서를 제게 들으시고는, 너무 순진한 생각은 아니냐고 하십니다.

젊은이들은 북한을 몰라서 그런다.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아니 이렇게 힘들여서 저들이 기어올라오지 못하게 만들었는데 왜 굳이 북한을 다시 성장하게 해서 불안한 미래를 가져오려고 하느냐 하는 그 실존적인 불편함 내지 불안감을 저는 대화중에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적지 않은 분들이 베트남의 공산화를 우리에게도 닥칠수 있는 위협으로 느끼는 듯 합니다. 그래서 걱정되어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시하려고, 아스팔트마져 녹이는 뜨거운 여름에 점점 더 많은 인원이 거리로 나오고 있는데, 현정부와 젊은 세대들이 너무 쉬운 한마디로 당신들을 보수꼴통으로 매도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젊은 세대의 입장을 반대로 설명하였습니다. 현정부를 거두절미하고 빨갱이 정권이라고 매도하지 말아 달라. 전쟁의 위협 없는 평화통일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엄숙한 책무이다. 북한과 미국의 지도자와 상황을 활용하여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평화협정을 추구하는 것은, 가 본 길이 아니어서 누구도 확신은 없지만, 분명히 시도해 볼만한 전략적인 정책이다. 이러한 통일정책의 선의를 북한에게 나라를 통채로 갖다 바치는 것처럼 매도하니 젊은 세대가 어른들에게 마음을 닫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취지로 말입니다.

운동장에서 뛰는 프로선수들은 아무리 팀을 나누어 경쟁하더라도 그저 평소실력을 키우고 실전에서 그 실력을 최고로 발휘하여 승리하기를 바랄뿐, 상대방을 원수로 여겨 넘어뜨려서 그로 인해 승리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게 게임의 룰이기 때문입니다. 프로선수들은 훌륭한 플레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여 더많은 관중이 오게 하고 더 인기를 얻겠다는 점에서 상대팀 선수들과 똑같은 이해관계(common ground)를 가지고 경기에 참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광화문과 서울광장에 태극기나 반일깃발을 들고 주말마다 나가는 두 부류의 사람들은 제게 보기에 나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 와중에 양쪽에 냉소를 보내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이 두 행동하는 국민들은 애국심이라는 common ground를 가지고 행동하는 이 나라의 진정한 힘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19기 시카고평통이 시작되었습니다. 부디 정치적인 입장이 달라도 상대를 공존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며 존중하는 성숙한 정치게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정부가 다수의 지지자들의 수임을 받아 추진하는 통일정책에 대해 최소한 그 추진세력의 애국심까지는 의심하지 않고, 잘되도록 하는 마음을 담아서 비판하면 좋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진보진영도 비판자들의 애국심과 경험에 의한 본능적인 불편함을 무시해서는 안되겠지요. 게임의 룰이 자리잡는 데에는 아마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우리의 조국은 뭐든지 재빨리 해내는 나라가 아니던가요. 엄중한 환경 가운데 19기 시카고평통을 이끌어가실 신임회장님과 자문위원분들의 건승을, 그리고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