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소후보 부티지지 ‘이유있는 급부상’

1283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피트 부티지지 사우스벤드 시장이 20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5차 TV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AP]
“화끈한 정책도 좋지만 대선 승리가 시급”
민주당 지지자들 ‘급진 진보주의’ 견제 기류
경선판도 4강 변화···돌풍 지속은 미지수

미국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급진 진보주의’를 견제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기류가 뚜렷해지고 있다. 그간 군소후보로 치부됐던 피트 부티지지(37)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의 급부상이 이런 흐름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진보 색채가 강한, 화끈한 정책은 말이야 좋은데, 과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항마로서 대선 승리를 담보하는 대안이 될 수 있겠느냐는 현실적 고민이 담겨 있다. 월스트릿저널(WSJ)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꺾을 ‘온건한’ 후보를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20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10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민주당 5차 대선후보 토론회는 앞선 4차례와 달랐다. 한창 진행 중인 탄핵조사 공개청문회를 의식한 듯, 정책 경쟁 대신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성토 분위기가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도 “토론회가 후보 상호 간 공격보다는 탄핵 공세 위주로 흘렀다”고 평가했다.
정책 검증이 부실했던 토론회에서 볼거리는 단연 부티지지였다. 워싱턴포스트(WP)는 부티지지를 5차 토론회의 최대 수혜자로 꼽았다. 증거도 수치로 제시했다. 그는 다른 후보로부터 공격 받은 횟수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6회)에 이어 4회를 기록했다. 발언 시간 역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13.4분) 다음인 12.8분이나 됐다. WP는 “부티지지는 오늘 밤 많은 경쟁자들의 표적이 됐다”고 달라진 위상을 표현했다.
부티지지는 한 달 전만 해도 그저 그런 대선 후보에 불과했다. 변화의 조짐은 18일 실시된 아이오와주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다. 그는 CNN방송과 현지 신문 디모인레지스터 공동 조사에서 25%의 지지율로 워런(16%), 바이든(15%),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15%) 등, 이른바 ‘빅3’를 큰 차이로 제쳤다. 뉴햄프셔주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NYT는 현재 민주당 경선 판도를 부티지지를 포함한 “4강 대 나머지 후보들의 대결”로 못박았다.
사실 그의 이력만 보면 트럼프의 맞상대가 될 만한 구석이 별로 없다. 이름도 생소한 중소도시의 지역 정치인인 데다 동성애자이고 또 성공회를 믿는다. 아프가니스탄에서 7개월 복무한 군 경험이 그나마 눈에 띄지만 누가 봐도 미 정가의 소수 그룹에 속한다.
이런 부티지지를 세상으로 불러낸 건 유권자들의 뒤바뀐 표심이다. 방아쇠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당겼다. 오바마는 얼마 전 한 연설에서 “민주당 경선이 지나치게 진보 경쟁에 치우치고 있다”며 사실상 선거에 개입했다. ‘누가 더 진보적이냐’를 놓고 선명성 싸움만 고집하다간 트럼프에게 필패할 것이란 경고였다.
부티지지도 2008년 오바마가 그랬던 것처럼 기본적으로 진보적 가치를 공유하며 세대교체를 주장한다. 유력 후보들과 다른 점은 현안에 접근하는 방법론이다. 대표적인 예가 건강보험 문제. 그 역시 오바마의 유산인 전국민건강보험제도(ACA·오바마케어)를 선호하나 점진적인 확대 적용을 해법으로 내세우고 있다. 즉각 실시를 공약으로 내놓은 워런이나 ‘정치혁명’을 구호로 삼은 샌더스와 확실히 차별화된 지점이다.
최근 민주당 지지자들의 생각도 부티지지와 비교적 일치한다. 아이오와 여론조사에서 단계적 변화를 좋아한다(52%)’는 응답이 ‘법제화 가능성이 적더라도 큰 변화를 가져올 정책을 지지한다(36%)’는 답변을 압도했다. ‘트럼프를 이길 후보’와 ‘자신의 신념과 같은 후보’ 중 하나를 고르라는 질문에도 각각 63%, 32% 비율로 대선 승리가 시급하다는 응답이 두 배나 많았다.
부티지지의 약진이 깜짝 돌풍에 그칠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실제 그의 전국 지지율은 여전히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다만 정권 교체란 현실론 앞에 기존 후보들에 대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불신이 커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WSJ는 “혁명의 길은 실패로 귀결된다는 오바마의 조언은 실질적 개혁을 바라는 유권자들의 메시지”라고 전했다. <김이삭 기자>

시카고 한인사회 선도언론 시카고 한국일보
615 Milwaukee Ave Glenview, IL 6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