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건초 더미〉시카고미술관 3
시카고 미술관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건초 더미 Stacks of Wheat〉6점을 전시한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25점 연작 중 일부이다. 인상주의는 전 세계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그림이다. 시카고 미술관의 인상주의 컬렉션은 한마디로 대단하다. 인상주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한 파리 오르세 미술관 다음으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함께 많은 작품을 소장한다.
시카고 미술관의 인상주의 컬렉션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1871년 시카고 대화재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부동산 재벌 포터 파머(1826–1902)와 부인 버사 파머(1849–1918)의 활약 덕분이다. 버사는 19세기 시카고 사교계를 주름잡던 여왕이었다. 패션 리더이자 열정적인 컬렉터로 문화 예술을 적극 후원하였다. 그녀는 당시 파리에서 떠오르는 인상주의 작품을 대거 수집하였다.
미국은 초고속 경제 성장으로 시카고의 파머를 비롯한 록펠러와 카네기, J. P. 모건 등 신흥 재벌들이 급부상한다. 이들은 백만장자의 거리 뉴욕 5번가를 형성하며, 예술과 문화적 전통이 없는 미국에서 조상들의 나라 유럽의 예술품에 눈독을 들였다. 그러나 고전주의 작품은 귀할 뿐더러 가격도 너무 비쌌다. 그 대안으로 파리에서 부상하는 인상주의 그림을 수집하였다.
미국 부자들에게 이러한 시장 분위기를 조성한 사람이 있다. 파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전설적인 미술상 폴 뒤랑 뤼엘(Paul Durand-Ruel, 1831–1922)이다. 그는 당시 화가들의 등용문인 파리 살롱전에서 번번이 낙선하는 인상주의를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든든한 조력자로 작품을 구매하고 전시를 개최하였다. 특히 당대 화단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인상주의자들을 위해 미국 시장을 개척해 큰 성공을 거둔다.
시카고의 버사 파머 또한 뉴욕 5번가의 부자들과 함께 폴 뒤랑 뤼엘의 고객이었다. 이 중 뉴욕의 설탕 재벌 헨리 오스본 해브마이어(1847–1907)와 부인 루이진 해브마이어(1855–1929)는 인상주의 여류 화가 메리 카사트의 친구로 예술가를 후원하는 슈퍼 컬렉터였다.
시카고 부동산 재벌과 뉴욕의 설탕 재벌의 자존심을 건 컬렉팅 경쟁이 시작되었다. 버사 파머는 1891년 5월 파리의 폴 뒤랑 갤러리에서 열린 15점의 건초 더미 전시에서 한꺼번에 9점을 구입하였다. 그러자 뉴욕의 루이진은 마네와 인상주의 걸작을 대거 구입하며 대응하였다. 본격적인 경쟁에 불이 붙었다.
과연 마지막 승자는 누구일까! 승자는 시카고 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관람객이다. 두 재벌의 컬렉션은 두 미술관에 기증되었다. 당시 부자들은 명예를 중요시하고 국가에 대한 공헌과 애국심이 있었다. 덕분에 시카고 미술관은 세계 최대 규모의 건초 더미를 비롯한 주옥같은 인상주의 작품을 소장하며 관람객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모네는 15점의 건초 더미를 모두 판매하였다. 연작에 대한 호평으로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며 화가 경력은 빛을 보기 시작한다. 1883년 지베르니에 정착한 모네는 사망할 때까지 40년 동안 집과 정원에서 3km 이내의 풍경을 많은 그림에 담았다. 모네의 작업실 바로 앞에는 거대한 건초 더미가 있었다. 모네는 계절과 날씨에 따라 매시간 미묘한 차이를 보이며 끊임없이 변하는 풍경에 깊이 매료되었다.
밀이나 곡물을 저장하는 3~6m 높이의 건초 더미는 유럽 전역의 흔한 풍경이었다. 더미의 모양은 지역마다 다른데, 지베르니가 위치한 노르망디는 둥근 모양으로 가파른 초가지붕 형태이다. 모네는 이웃 농부의 밭에서 두 개의 건초 더미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끊임없이 변하는 빛과 분위기를 포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수레에 실을 만큼 캔버스를 가져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때로는 하루에 10~12개의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모네의 근본적인 주제는 시간과 빛이다. 그는 시간대별로 변하는 빛과 대기의 분위기를 건초 더미에서 묘사하였다. 연작은 빛의 변화를 포착한 시간의 기록이다. 이른 아침부터 깊어지는 빛을 순차적으로 화면에 옮겼다. 날씨와 그림의 진행 상황에 따라 며칠이나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반복되었다. 계절이 바뀌면 이 과정은 새롭게 시작되었다. 같은 대상이지만 색상은 풍부해지고 다양한 색감이 탄생되면서 그림은 다채로워졌다. 마지막은 작업실에서 마무리하였다.
1890년 9월에 시작한 그림은 약 7개월이 걸렸다. 전시에 공개된 건초 더미 시리즈는 색상의 혁명을 넘어선 그 이상으로 연작의 의미를 성공적으로 각인시켰다. 시골의 평범한 장면은 인상주의 예술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변화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모네는 완벽주의자였다. 미진한 캔버스는 과감하게 파기하였다. 연작의 성공으로 모네는 냉정한 자기 비평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포플러, 루앙 대성당, 250여 점의 수련 연작을 시작하며 인상주의 연작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건초 더미는 예술적으로, 재정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모네의 그림 가격은 급등하였다. 그는 지베르니의 집을 매입하고 수련이 탄생한 연못을 조성하였다. 현재 지베르니는 모네 그림의 원천으로 세계적인 예술적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모네는 총 2,500여 점의 작품을 남기며, 1926년 86세에 사망하였다.
시카고 미술관의 모네 컬렉션은 총 46점으로, 300여 점을 소장한 프랑스 파리의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150여 점을 소장한 오르세 미술관에 이어 세계 세 번째이다. 모네의 건초 더미 25점은 미국 미술관이 13점, 프랑스에 3점, 나머지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전시된다.
<이 아네스 미술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