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한국외대 문휘창 총장과 보낸 어느 봄날의 기록
경계를 허무는 거인의 발걸음, 이문동의 봄은 깊었다
봄은 이문동 골목 어귀에서부터 서성이고 있었다. 2026년 3월 11일,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세계적 경영 전략 석학인 문휘창이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의 지휘봉을 잡은 지 어느덧 한 달 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가 머무는 총장실은 학문적 엄숙함보다는 미래를 향한 역동적인 공기로 가득했다. 정갈한 수트 차림에 인자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그는, 마치 오랫동안 벼린 칼날을 꽃꽂이하듯 부드럽게 다루는 시인과도 같았다. 서울대라는 견고한 상아탑을 나와 ‘사이버’라는 무한한 영토를 선택한 그의 행보는 파격적이다. 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지 불과 몇 분 만에 깨달았다. 그는 안주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을 재정의하고 한국의 지성을 세계라는 거대한 그릇에 담아내기 위해 이 척박한 개척지를 선택했다는 것을. 이문동의 봄볕은 그의 안경 너머에서 반짝이며,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고 있었다.
지식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다
그는 교육의 패러다임이 변했음을 단호하게 선언했다. 과거의 대학이 지식을 가두어두고 특정한 공간에서 전수하던 ‘저수지’였다면, 이제는 누구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강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새로운 기술 앞에서 매뉴얼을 찾지만, 요즘 세대는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길을 찾는다.”는 그의 말에서 젊은 세대를 향한 깊은 신뢰가 묻어났다. 그가 보기에 대학의 가치는 더 이상 지식 전달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검색 한 번이면 세상의 모든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에, 대학은 지식을 체계화하고 인간적인 통찰(Human Touch)을 더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사이버 대학은 그에게 있어 단순한 온라인 강의실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허물고 인간의 모티베이션이 가장 극대화되는 ‘열린 광장’이었다. 그는 지식이 소유의 대상이 아닌 공유의 흐름이 될 때, 비로소 진정한 경쟁력이 태어난다고 믿고 있었다.
세상이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세상 속으로 스며들리라
그는 교육을 더 이상 특정 ‘장소의 점유’나 ‘물리적 이동’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인터뷰 중 가장 날카로운 지성의 통찰이 빛났던 지점은 그가 제시한 ‘인사이드 아웃(Inside-Out)’ 전략이다. “전통적인 대학들이 유학생을 국내로 유치하려는 ‘아웃사이드 인’ 모델에 천착할 때, 우리는 정반대의 길을 봅니다. 하드웨어의 한계에 갇힌 채 정원 규정과 교사 면적을 고민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세계를 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그는 단언했다. 실제로 기존 대학들은 유학생 유치 과정에서 까다로운 교육부 규정에 부딪히거나, 때로는 유학이 불법 이민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부작용을 겪기도 한다. 그는 발상을 완전히 뒤집어 학생이 오지 못한다면 프로그램이 직접 국경을 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A급 교수가 우즈베키스탄 학생 한 명을 가르치기 위해 4박 5일 출장 강의를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시간과 비용의 벽이 너무 높기 때문이죠”라는 그의 설명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러나 문 총장은 디지털이 가진 ‘확장성’이라는 마법에서 답을 찾았다. “경영학적으로 볼 때 디지털 콘텐츠는 초기 고정 비용은 발생하지만, 한 명이 듣든 만 명이 듣든 추가로 발생하는 가변 비용은 사실상 제로(0)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비용의 혁신이야말로 전 세계 인재들에게 가장 저렴하면서도 고품격인 교육을 선사할 수 있는 우리만의 강력한 무기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시선은 이미 반대편 대륙의 성공 사례를 관통하고 있었다. “스페인의 한 온라인 대학에서는 이미 20여만 명의 대규모 학생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특정 상아탑에 갇히지 않고 강물처럼 흐를 때 어떤 폭발력을 갖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숫자죠”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우리 사이버한국외대 또한 수만 명의 세계인이 동시에 한국의 지성을 호흡하는 거대한 플랫폼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꿈꾸는 ‘규모의 경제’를 넘어선 ‘가치의 세계화’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세상이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세상의 모든 안방과 일터로 스며들겠다는 그의 포부는, 단순한 확장을 넘어 지식의 영토를 지구촌 전체로 재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산물이었다.
시카고의 밤, 디아스포라의 가슴에 학문의 불꽃을 지피다
대화의 물길은 자연스럽게 미 중부의 심장, 시카고로 흘러갔다. 15년간 미국에서 교포 사회를 몸소 겪었던 문 총장은 시카고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시카고는 미국 정통파 한인 사회의 원류와도 같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세탁소, 그로서리, 주유소를 운영하며 자식들을 키워낸 우리 1세대들의 사투는 그야말로 눈물겨운 대서사시였지요”.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존경과 안쓰러움이 교차했다. “우리 교민들은 미국에서 미국 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미국 안의 한국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그 모임 속에서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는 응어리가 생각보다 큽니다. 유교적 정서 탓인지 학위가 없으면 지식인으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일종의 열등감이 삶의 이면에 자리 잡고 있어요”. 그는 이 갈증을 풀어줄 해법으로 시카고 한인회와 연계한 ‘지식의 연대’를 제안했다. “물리적 거리는 이제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실시간 라이브 온라인 강의를 통해 한국의 정예 교수진과 시카고의 교민들이 안방에서 직접 마주하게 할 것입니다. 우선은 부담 없는 최고경영자 과정(CEO 과정)으로 시작해 보려 합니다”. 특히 그는 비학위 과정에서 얻은 학점을 정식 학위로 인정해 주는 ‘마이크로디그리’의 확장성을 강조했다. “공부라는 건 단순히 지식 습득이 아니라 한 인간의 품격을 세우는 일입니다. 시카고 교민들이 검증되지 않은 정보로 다투는 대신,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수준을 세계 최고로 끌어올리는 것, 그것이 제가 지식인으로서 갚아야 할 부채입니다”. 열정을 띤 그의 눈빛은 이미 시카고의 푸른 밤을 밝히는 학문의 등불이 되어 있었다.
ABCD, 벼린 칼날 위에 피어난 한국형 성공의 문법
문휘창 총장의 학문적 정수이자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대한민국 성장 엔진의 설계도로 평가받는 ‘ABCD 모델’은 인터뷰 내내 대화의 단단한 뼈대를 이루었다. 그는 한국이 폐허 위에서 일궈낸 기적 같은 성취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우리 민족의 심장 속에 각인된 네 가지 유전자의 결합이었다고 분석한다. “과거 우리를 상징하던 ‘빨리빨리’ 문화는 이제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세계가 부러워하는 민첩성(Agility)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변화의 파고를 먼저 읽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이 속도감이 한국을 여기까지 끌어온 첫 번째 동력이었지요”. 그는 또한 한국 경제 성장의 또 다른 요인으로 벤치마킹(Benchmarking)을 꼽았다. 선진 기술과 제도를 빠르게 배우고 이를 한국적 상황에 맞게 적용해 온 과정이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그의 담론은 창조를 넘어, 이질적인 것들을 섞은 새로운 융합(Convergence)의 생태계로 이어진다. 특히 그는 인공지능(AI) 시대의 파고를 넘기 위한 핵심 열쇠로 융합을 꼽았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사이버 대학이라는 플랫폼에 AI라는 첨단 엔진을 달고, 거기에 외국어와 사회과학적 방법론이라는 도구를 얹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합니다. 번역할 때도 교수 한 명의 지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AI 모델의 결과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다듬는 융합적 사고가 필요합니다”라는 그의 설명은 구체적이었다. 그러나 문 총장이 가장 강조한 성공의 마지막 퍼즐은 바로 헌신(Dedication)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전략이 있어도, 공동체를 향한 뜨거운 가슴, 즉 헌신이 없다면 그 성공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 제가 이 나이에 사이버 대학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 이유도 배움의 기회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지식의 등불을 전하겠다는 일종의 헌신입니다”. 그의 K-전략은 단순히 남을 이기기 위한 차가운 전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각자의 역량을 극대화하여 우리 사회 전체의 품격을 높이고, 나아가 인류가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따뜻한 상생의 철학에 닿아 있었다. 벼린 칼날처럼 예리한 그의 지성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낮은 곳을 향한 헌신이라는 이름의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숫자 너머를 보는 혜안, 무역 전쟁이 아닌 ‘마음의 투자’
최근 트럼프와 세계 정세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독특하고 명확했다. 사람들은 이를 ‘무역 전쟁’이라 부르며 관세에 매몰되지만, 그는 이를 ‘투자 전쟁’이라 읽는다. “트럼프의 목표는 관세 그 자체가 아니라, 미국 내에 공장을 짓고 사람을 고용하게 만드는 투자 유치에 있다”는 그의 통찰은 복잡한 국제 정세를 단숨에 관통한다. 이러한 혜안은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교육 또한 지식을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속에 지혜의 씨앗을 심는 ‘투자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국제전이라는 거대한 판 위에서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은 단순한 상품의 이동이 아닌, 가치와 문화의 이동임을 역설했다. 그가 꿈꾸는 ‘국제촌 프로젝트’ 또한 한류의 본산으로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피지컬 인프라의 필요성을 역설한 대목이었다.
접근성을 넘어 탁월함으로, AI와 휴머니즘의 황홀한 공존
그는 사이버 대학의 슬로건을 ‘접근성을 넘어 탁월함으로(From Access to Excellence)’라고 정의했다. 누구나 들을 수 있다는 ‘접근성’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이류 교육일 뿐이지만, 최고의 교수진과 혁신적인 시스템이 결합한다면 오프라인 대학을 뛰어넘는 ‘탁월함’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특히 그가 제안한 ‘키 메시지 트랜슬레이션(Key Message Translation)’은 혁신적이다. 완벽한 문법에 갇히지 않고 AI를 활용해 핵심만을 전달함으로써 언어의 장벽을 낮추는 이 기술은, 시각 장애인이나 외국인 학생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것이다. “AI가 화려한 문장을 만들 순 있지만, 그 문장에 온기를 불어넣고 톤을 조절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라는 그의 말에서 기술을 다루는 지혜로운 인간의 얼굴을 보았다.
세계 1위라는 꿈,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 가장 높은 혁명
인터뷰의 끝자락, 그는 세계 1위의 사이버 캠퍼스를 향한 포부를 숨기지 않았다. 그것은 숫자의 1위가 아니라 가치의 1위다. 한 학기에 130만 원이라는 합리적인 등록금으로 누구나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 장애와 국경을 넘어 배움의 기쁨을 누리는 세상을 그는 꿈꾸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시카고의 한인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삶의 무게에 지쳐 배움의 꿈을 접었던 분들에게, 우리가 먼저 다가가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울림은 컸다. 총장실을 나서는 길, 이문동의 공기는 아까보다 훨씬 따뜻해져 있었다. 문휘창이라는 지성이 쏘아 올린 작은 불꽃이 시카고의 밤하늘을 넘어 전 세계로 번져나갈 것임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취재 수첩을 덮으며 문득 그가 강조한 ‘휴먼 터치(Human Touch)’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인공지능이 시를 쓰는 시대에도, 결국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진정성 어린 눈빛과 헌신적인 마음이다. 문휘창 총장은 디지털이라는 차가운 도구로 세상을 가장 따뜻하게 품으려는 로맨티스트였다. 그의 꿈이 이끄는 대로, 사이버한국외대가 세계를 잇는 거대한 가교가 되길 빌어본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시인/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