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트럼프의 공영방송 예산 삭감안 저지 기회 ‘포기’…내부 반발도

76
사진 axio

연방하원 민주당 지도부가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한 공영방송 및 해외원조 예산 90억 달러 삭감을 법제화하는 법안을 저지할 수 있었던 결정적 기회를 활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도부는 현실적으로 승산이 없었다는 입장을 내세웠지만, 민주당 지지층 내부에서는 강한 반발이 일고 있다.

문제가 된 법안은 NPR과 PBS 등 상징성이 큰 기관의 예산을 삭감하는 내용으로, 금액 자체는 연방 예산 전체에서 보면 미미하지만 민주당 핵심 유권자들에게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자금집행통제법(Impoundment Control Act)’에 따라 18일 자정까지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도록 지연 전술을 펼칠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런 움직임은 끝내 없었다.

하킴 제프리스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해당 삭감안 표결 직전 단 15분간만 연설했다. 이는 이달 초 공화당의 ‘빅 뷰티풀 법안’을 지연시키기 위해 무려 9시간 가까이 연설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민주당은 하원 규칙위원회에서 수정안들을 대거 상정해 시간을 끄는 전략도 사용하지 않았고, 대신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법무부 문서 공개를 요구하는 몇 개의 수정안만 제출했다.

결국 해당 법안은 18일 자정 직후 공화당의 주도로 하원을 통과했고, 민주당은 전원 반대했으며 공화당 소속 마이크 터너와 브라이언 피츠패트릭 의원도 반대표를 던졌지만 법안 저지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표결 전날 밤 의원들에게 표결을 마감 시한 이후로 미루는 것이 일부가 주장하는 ‘치명타’ 효과를 내지는 못할 것이라는 법률 자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지도부 측 설명에 따르면, 해당 마감 시한은 상원에만 적용되며, 상원은 일정 기간 내 51표만으로 해당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설령 이 해석이 잘못됐고, 시한을 넘기게 되더라도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기 전까지의 ‘몇 시간’만 무효 처리될 뿐 실질적 효과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는 마감 시한 자체를 무시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그러나 모든 의원이 이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이날 밤 민주당 의원총회 내부 및 외부 회의에서 조시 라일리 하원의원은 이러한 해석에 이의를 제기했다고 복수의 의원들이 전했다. 상원 법사위 자문위원 출신인 라일리는 “설령 법적 효과가 약하더라도, 시한을 넘겨 표결을 지연시켜야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 차원에서 지연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민주당 지도부 소속 진보 성향의 맥스웰 프로스트 하원의원은 “모든 조각이 하나의 퍼즐처럼 연결돼 있다. 하나하나 막아야 전체 그림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수의 하원 민주당 의원들은 지도부의 법적 판단을 받아들였으며, 일부 상임위 중진들도 정치적·법적 논리가 모두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프라밀라 자야팔 의원은 “이번 이슈는 미국국제개발처(USAID)와 공영방송에 가해지는 피해, 그리고 의회의 예산 통제권 문제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며 “이를 절차적 논쟁으로 끌고 가면 오히려 메시지가 흐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레드 허프먼 하원의원도 “실제로 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누구나 관심을 가졌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전투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영재 기자>

[시카고 한인사회 선도언론 시카고 한국일보]
1038 S Milwaukee Ave Wheeling, IL 60090
제보:224.283.8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