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양소주 조웅래 회장이 말하는 ‘맨발의 청춘’과 ‘맛있는 혁명’
2025년 11월 28일, 초겨울의 알싸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오후였다. 대전 서구 영골길, 대둔산 끝자락에 자리 잡은 선양소주 제조 공장의 회장실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중후한 오크 향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펄떡이는 에너지’였다. 올해로 67세. 흔히 기업의 회장이라 하면 무게 잡힌 정장과 근엄한 표정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웅래 선양소주 회장은 달랐다. 탄탄한 구릿빛 피부, 붉은색 중절모를 쓰고 붉은 자켓으로 매칭을 한 멋쟁이, 그리고 무엇보다 청년보다 더 빛나는 장난기 어린 눈빛. 그는 마치 방금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고 들어온 사람처럼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소주 파는 놈’이라 투박하게 지칭하며 껄껄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에는 대한민국 벤처 1세대의 치열함과 20년 넘게 맨발로 황톳길을 다져온 수행자의 고요한 내공이 공존하고 있었다. 시카고와 미 중서부를 넘어 전 세계 한인들에게 ‘꺾이지 않는 도전’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 비범한 ‘주류(Mainstream)의 반란군’과 마주 앉았다.
‘맛없는 소주’에 던진 맛있는 반란표, ‘선양’의 도발
“소주도 음식인데, 왜 주는 대로 마셔야 합니까? 우리는 맛집은 찾아다니면서 소주는 그냥 관습처럼 마십니다. 나는 그게 싫었습니다.”
조웅래 회장의 첫 마디는 도발적이었다.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이라는 거대 공룡이 양분하고 있는 대한민국 소주 시장. 그 견고한 틈바구니에서 ‘선양소주’가 쏘아 올린 공은 단순한 신제품 출시가 아닌 ‘미각의 해방’이었다. 그는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희석식 소주에 반기를 들었다. 국내 최저 도수, 최저 칼로리(제로 슈거)를 넘어 소주에 ‘숙성’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그는 미국 켄터키주에서 공수한 오크통 3천 개를 공장에 들여왔다. 버번위스키의 본고장에서 온 그 통에 소주 원액을 넣어 숙성시켰다.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지난 3~4월 GS25를 통해 선보인 ‘선양 오크’ 등은 품절 대란을 일으키며, 올 한 해 500만 병 이상 팔려나갔다. “한국 소주 시장은 거대한 두 기업이 장악하고 있어 소비자 입맛이 길들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구는 다양합니다. 나는 그 0.1%의 틈새, ‘맛있는 소주’를 원하는 대중의 갈망을 파고들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선양의 돌풍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획일화된 주류 문화에 던진 통쾌한 돌직구였다.
700 서비스에서 오크통 소주까지, 벤처 1세대의 ‘피벗(Pivot)’ 본능
조 회장의 이력은 한 편의 반전 드라마다. 20대에는 삼성의 엘리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고, 30대에는 단돈 2,000만 원으로 창업해 ‘700-5425’라는 전화 정보 서비스로 대박을 터뜨린 벤처 신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랬던 그가 40대에는 돌연 대전의 향토 소주 회사를 인수했다. IT에서 주류 제조업으로의 변신. 주변에선 “미쳤다”고 했다.
“궁(窮)하면 통한다고 했습니다. 절박함이 없으면 변화도 없죠. 나는 늘 맨땅에 헤딩하듯 살았습니다. 엔지니어가 술을 파니,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습니다.”
그의 경영 철학은 ‘끊임없는 피벗(Pivot, 방향 전환)’이다. 남들이 가는 길은 가지 않는다. 대기업이 물량 공세를 퍼부을 때, 그는 오크통을 가져오고 디자인을 바꿨다. 이는 벤처 1세대 특유의 야생성과 생존 본능이 빚어낸 결과다. “안주하는 순간 죽는다”는 그의 말은 급변하는 시대에 방향을 잃은 젊은 창업가들에게 보내는 서늘하고도 묵직한 조언처럼 들렸다.
“몸이 답이다” 25년 마라톤과 맨발의 철학
인터뷰 도중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하체 시범을 보일 기세였다. 조 회장은 스스로를 ‘건강 전도사’가 아닌 ‘몸 신봉자’라 부른다. 그는 25년째 마라톤을 뛰고 있다.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했고, 대한민국 국토 경계 한바퀴 5,228km를 두 발로 완주했다. 그것도 모자라 대전 계족산에 황토를 깔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나보고 독하다고 합니다. 한 번 뛸 때 45km씩 뛰고, 매주 금요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길을 나서니까요. 하지만 이건 독한 게 아니라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의식입니다.”
그에게 마라톤과 맨발 걷기는 경영과 맞닿아 있다. “마라톤은 남과 싸우는 게 아니라, 어제의 나, 그리고 지금의 한계와 싸우는 겁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쟁사를 이기려 들면 무리수를 두게 되지만, 나 자신의 품질과 타협하지 않으면 결국 소비자가 알아줍니다.” 그는 직원들에게도 ‘면수습 마라톤’이라는 독특한 통과 의례를 제안한다. 10km를 함께 뛰며 땀 흘리는 과정에서 진짜 동료애가 생긴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에게 건강은 스펙이 아니라, 리더가 갖춰야 할 최우선의 ‘자본’이었다.
계족산 황톳길 20년 바보가 만들어낸 기적의 가치
대전 계족산 황톳길은 이제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관광 100선’에 드는 명소가 되었다. 하지만 20년 전 조 회장이 처음 산에 붉은 황토를 깔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돈키호테’ 취급했다.
“매년 10억 원이 듭니다. 흙을 깔고, 비 오면 유실된 걸 다시 채우고, 숲속 음악회를 엽니다. 입장료? 없습니다. 그냥 와서 걸으시면 됩니다.”
기업가가 수익성 없는 일에 매년 10억을 쓴다? 자본주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이것을 ‘상생의 투자’라고 불렀다. “지역 기업은 지역민의 사랑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내가 먼저 다가가고 내가 먼저 베풀면, 언젠가는 그 진정성이 브랜드의 가치가 됩니다.” 실제로 선양소주는 판매 수익의 일부를 적립해 지역 장학금으로 내놓고 있다. 20년간 이어진 그의 ‘바보 같은 투자’는 이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거대한 신뢰 자산이 되어, 대기업의 공세 속에서도 선양소주를 지키는 든든한 방패가 되고 있다.
“짠~ 중앙으로!” 2030이 환호하는 ‘힙’한 회장님
최근 조웅래 회장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의 SNS 영상 조회 수는 한 달에 2,000만 뷰를 넘나든다. 67세 회장님이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소주를 마시며 김치를 찢어 먹고, 마라톤 복장으로 춤을 춘다. 권위는 쓰레기통에 버린 지 오래다.
“젊은 친구들이 댓글을 달아요. ‘나도 저 할배처럼 늙고 싶다’, ‘저 형님 찐이다’. 처음엔 다들 미쳤다고 했죠. 점잖은 회장님이 왜 저러냐고. 하지만 나는 그들과 ‘날것’으로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만든 건배사 ‘짠, 중앙으로!’는 이제 대학가 술자리의 유행어가 되었다. 잔을 부딪치는 행위를 넘어 마음을 중앙으로 모으자는 의미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은 가르치려 드는 ‘꼰대’는 딱 질색한다. 그저 내 삶을 보여주고, 같이 웃고, 망가지는 모습 속에서 동질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의 파격적인 소통 행보는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 세대 차이를 뛰어넘어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고 싶은 그의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로컬에서 글로벌로, 시카고를 넘어 세계의 식탁으로
이제 선양소주의 시선은 세계를 향한다. 이미 미국 시카고를 비롯한 해외 시장에 선양 소주가 깔리기 시작했다. 미얀마에는 현지 공장을 짓고 있다. K-컬처, K-푸드 열풍과 함께 한국 소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이 ‘골든타임’이라는 판단이다.
“미국 켄터키의 오크통이 한국의 소주를 만나 다시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이보다 더 매력적인 스토리가 어디 있습니까?”
특히 그는 최근 출시한 40.2도의 프리미엄 소주 ‘사락 골드’와 오크 숙성 소주가 위스키에 익숙한 서구권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통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는 “글로벌 기업이 장악한 시장에서도 ‘한국적인 변주’는 통한다”며 “선양소주가 동포 사회에는 고향의 향수를, 현지인들에게는 새로운 미식의 경험을 제공하는 매개체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가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것도 바로 이 ‘로컬의 반란’에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
AI 시대의 생존법? “스펙 말고 ‘오감(五感)’을 키워라”
인터뷰 말미, 그에게 미래 세대를 위한 조언을 구했다. AI가 인간의 지성을 위협하는 시대, 우리 청년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그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공부? 스펙? AI가 다 합니다. 인간은 ‘감각’을 키워야 합니다.”
그는 최근 ‘짠 중앙으로’ 노래를 AI로 작곡해 선물해 준 한 산부인과 의사의 이야기를 꺼냈다. “취미로 하는 사람이 전문가를 이기는 세상입니다. 왜냐? 즐기니까요. AI는 0과 1의 조합이지만, 인간은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땀을 흘리며 느끼는 존재입니다. 그 오감의 영역, 감성의 영역은 AI가 절대 흉내 낼 수 없습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있지 말고, 운동화 끈을 매고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바람을 느끼고, 사람을 만나고, 부딪히며 얻는 ‘야생의 감각’이야말로 다가올 미래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이다.
아름다운 빚쟁이의 고백, “받은 사랑은 흥으로 갚는다”
조웅래 회장은 ‘흥(興)의 빚쟁이’다. 그는 대전 시민들에게 그리고 자신을 응원해 주는 수많은 팬에게 즐거움과 건강을 빚졌다고 생각한다. 소주 한 병 팔 때마다 5원씩 적립해 장학금을 주는 것도, 맨몸 마라톤과 맨발 축제를 열어 사람들을 춤추게 하는 것도 그 빚을 갚는 과정이다.
“인생 별거 없습니다. 정해진 길도 없고요. 내가 걸어가면 그게 길이고, 내가 즐거우면 그게 성공입니다. 나는 90살이 되어도 쫄쫄이 바지 입고 마라톤을 뛸 겁니다. 그때까지 선양소주도 계속 맛있어질 거고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조웅래 회장이 건넨 ‘선양 오크’ 한 잔의 향이 입안에 길게 남았다. 그것은 쓴맛이 아니라, 묵직하면서도 달콤한 목 넘김이었다. 마치 그의 인생 같았다. 남들이 가지 않는 자갈밭을 맨발로 걸어와, 끝내 황톳길이라는 명작을 만들어낸 사내. 대기업의 틈바구니에서 기죽지 않고, 오히려 “한판 붙어보자”며 윙크를 날리는 67세의 청년.
시카고를 넘어,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길을 찾아 헤매는 전 세계의 모든 이들에게 전한다. 혹시 눈앞의 현실이 막막하고 두려운가? 그렇다면 조웅래 회장이 던지는 이 투박하지만 본질적인 돌직구를 기억하라고 말하고 싶다.
“머리로 계산하지 마라. 몸이 답이다. 일단 밖으로 나가 땀을 흘려라. 세상에 정해진 길은 없다. 남들이 가는 뻔한 길 말고, 내가 가슴 뛰는 ‘나만의 길’로 방향을 틀어라. 그때 비로소 당신의 진짜 인생이 시작될 것이다.”
지금 미국 중서부 어딘가에서 선양소주를 마주친다면, 반갑게 잔을 들어주길 바란다. 그 투명한 병 속에는 한국의 흙냄새와, 멈추지 않는 한 남자의 뜨거운 심장 박동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
“자, 마음을 모아서! 짠~ 중앙으로!”
<이가희 시카고한국일보 한국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