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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February 1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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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스의 세계미술관 산책 9>가난한 청년 피카소의 청색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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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미술관 6

누구에게나 청년 시절은 존재한다. 꿈을 향해 질주하는 열정과 채워지지 않는 갈증, 결핍으로 힘든 시기이기도 하다. 20세기 현대 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화가로서 최고의 부와 명성을 누리며 92세까지 장수하고 수많은 여인과 사랑을 나눴던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지독한 가난과 좌절로 점철된 청년기가 있었다.

시카고 미술관의 모던 윙에는 피카소의 참혹했던 청년기를 상징하는 명작 <늙은 기타리스트(The Old Guitarist)>를 전시한다. 그림 앞에는 늘 관람객이 서성이며, 도슨트의 목록에도 포함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곳은 60여 년에 걸친 피카소의 다양한 화풍을 담은 20여 점의 컬렉션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하고 드문 공간이다.

<도슨트와 관람객>

피카소의 화려한 경력 중 청색 시대(Blue Period)는 가장 우울한 시기이다. 동시에 그가 예술적으로 성숙할 수 있었던 결정적 발판이었다. 20세부터 약 4년 동안 그는 8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이는 화가로서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청년 피카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귀한 기록이다.

피카소는 10대에 이미 기성 대가들을 압도하는 천재성을 보였다. 마드리드 왕립 아카데미에 진학했지만 틀에 박힌 교육에 싫증을 느끼고, 프라도 미술관에서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 고야의 작품을 모사하며 독학했다. 그는 카탈루냐의 진보적인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당시 유행하던 인상주의와 상징주의 미술을 흡수하였다.

피카소는 20세에 당시 예술의 중심지 파리로 향한다. 그러나 화려한 도시 뒤편의 뒷골목에는 혹독한 빈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 라자르 여성교도소를 자주 방문하며 거리의 부랑자와 거지 등 소외계층을 모델로 그들의 고통을 화폭에 담았다. 특히 친구 카사헤마스의 자살이라는 개인적인 비극이 맞물리며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맞았다.

청색 시대의 문은 여기서 열렸다. 친구의 죽음과 눈앞에 닥친 빈곤 속에서 피카소는 인간의 근원적인 슬픔을 차가운 푸른색으로 표현한다. 이 시기의 정점을 보여주는 <늙은 기타리스트>는 그의 예술적 고향인 바르셀로나에서 탄생했다. 그는 스페인 바로크의 거장 엘 그레코의 길게 늘린 인물에서 영감을 받았다. 기타리스트의 수척한 형상에는 스페인 특유의 비극적이고 엄숙한 정서가 배어 있어 신비로운 경건함마저 자아낸다.

<늙은 기타리스트 The Old Guitarist> 1904, 유채화, 122.9 × 82.6 cm

좁은 사각형 틀 안에 몸을 웅크린 노인은 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히 고립되어 있다. 고개를 꺾고 어깨를 둥글게 만 시각 장애인의 모습은 사회로부터 내몰린 소외된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섬세하게 묘사된 앙상한 손가락과 발가락은 화면 속에서 유난히 도드라지며 관람객의 시선을 잡는다.

직선으로 뻗은 메마른 팔다리와 각진 화면 속에서 노인은 둥근 곡선의 기타를 비스듬히 품고 있다. 온화하고 따뜻한 갈색의 기타는 푸른 화면 속에서 유일하게 부드러운 생동감을 준다. 기타는 냉혹한 현실과 절망 속에서 피어난 단 하나의 온기이자 생명력이다. 깡마른 노인이 기타에 몸을 기댄 채 연주에 몰입하는 모습은, 고통 속에서 예술만이 유일한 구원으로 비춰진다. 그는 기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의 슬픔을 숭고한 음악으로 승화시킨다.

피카소는 늙은 악사의 모습을 통해 캔버스를 살 돈조차 없지만 끝내 예술을 놓지 못하는 자신을 투영하였다. 실제로 이 작품을 X선으로 투시하면 밑면에는 아이를 안은 여인과 동물들의 형상이 보인다. 이미 그린 그림 위에 다시 덧그려야만 했던 처절한 가난은 역설적이게도 그를 창작의 몰입으로 이끌며, 멈추지 않는 실험 정신의 원동력이 되었다. 가난은 독자적인 예술 체계를 구축하게 만든 단단한 방패였다. 훗날 그는 “가난은 내가 세상을 더 깊이 보게 했고, 배고픔은 내 붓을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고 회고한다.

청색 시대는 푸른색으로 우울함을 묘사한 시기를 넘어, 20세기 미술의 판도를 바꾼 입체주의(Cubism)의 서막을 예고한다. 배경과 인물의 모호한 경계, 왜곡된 신체, 납작하게 눌린 형태는 대상을 평면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큐비즘의 시도이다. 동시에 눈먼 노인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빈곤과 고독을 그 누구보다 날카롭게 직시하였다.

피카소는 직접 겪은 사회 최하층민의 삶을 당사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탐구하게 되었다. 그에게 예술은 단순한 미의 추구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던지는 공격과 방어의 무기였다. 스페인 내전의 비극을 전 세계에 알린 <게르니카>와 6.25 전쟁의 참상을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은 전쟁의 잔혹함을 고발한 역사적인 기록물이다. 피카소는 예술가가 시대의 비극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그림으로 증명하였다.

그는 기존의 관습을 파괴하고 새로운 화법을 창조한 현대 미술의 거인이다. 혹독했던 청색 시대가 지나고 연인을 만나며 찬란한 장밋빛 시대를 맞이한다.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안주하지 않고 아프리카 조각에서 영감을 얻은 원시주의를 시작으로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도전하며, 20세기의 미적 기준을 바꾼 위대한 혁명가였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붓을 놓지 않은 다작의 화가이다. 회화뿐만 아니라 판화, 조각, 도자기, 무대 디자인 등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약 15만 점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그의 삶 자체가 곧 하나의 거대한 예술이었다. 피카소 예술에서 가장 처절했던 청년기의 걸작 <늙은 기타리스트>를 시카고 미술관에서 감상해 보자.

<이 아네스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