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스의 세계미술관 산책2]예술 작품인가 건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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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밀레니엄파크(2)

시카고는 2000년 밀레니엄을 맞아 공원을 개장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공원은 황량한 일리노이 중앙철도 차량기지와 주차장이 있던 자리이다. 공사 지연으로 4년이 지난 2004년에야 정식으로 ‘밀레니엄 파크’가 오픈했다. 공원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옥상 정원으로 탈바꿈했다. 지하층에는 주차장, 열차역, 철도 노선 등이 있다.

시카고는 각고의 노력으로 매년 2,500만 명이 찾는 명소를 탄생시켰다. 공사비의 거의 절반은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볼품없었던 삭막한 땅덩어리는 현재 미국 10대 공원에 들며, 중서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이다. 매년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공원의 1등 공신이자 주역은 단연 공공미술 작품과 세계적인 건축물이다.

시카고의 명물이 된 설치미술 작품 ‘클라우드 게이트’와 ‘크라운 분수’와 함께 공원의 랜드마크이자 중심지는 야외음악당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Jay Pritzker Pavilion)이다. 건축물에 기금을 제공한 하얏트 호텔 소유주 제이 프리츠커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공연장 또한 난항을 거듭하며 탄생했다. 음악당 건축 공모전을 개최했지만 후원자와 공원 관계자 간의 의견 불일치로 여러 번 불발됐다. 결국 프리츠커는 캐나다 출신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Owen Gehry, 1929~)의 영입을 강력히 추진하며 결론을 내렸다.

게리가 합류하고 시공에 들어갔지만, 시카고의 건축 고도 제한으로 착공을 하지 못하는 변수가 생겼다. 결국 ‘예술 작품’으로 분류하며 일단락됐다. 공사비 또한 초기 예산의 5배로 증가했다. 완공된 파빌리온은 시카고의 현대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상징적인 건축물로 급부상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단숨에 집중시켰다. 파격적이고 기념비적인 게리의 디자인은 최첨단 기술과 혁신적인 재료를 결합하여 단순한 공연장의 의미를 넘어섰다.

역동적인 36m 높이의 음악당은 펄럭이는 배의 돛(Sail)에서 영감을 받았다.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높이 솟아오른 대담하고 다이내믹한 곡선은 미래지향적이다. 거대한 금속 리본이 휘감기듯 물결치고, 꽃잎처럼 솟아오르기도 한다. 뒤틀린 금속 패널은 햇빛 반사를 극대화하며 게리 특유의 조각적이고 비정형적인 스타일을 드러낸다. 강렬한 햇빛이 비치는 날이면 공원에는 찬란한 불꽃이 타오르며 빛의 향연이 벌어진다.

파빌리온의 고정 좌석은 4,000석이다. 여기에 잔디밭을 결합하여 7,000명 이상의 청중을 수용하도록 공간을 확장했다. 무대를 감싸며 잔디밭 전체를 가로지르는 구조물은 강철 트렐리스(Trellis)이다. 덮개형 구조물은 679개의 거대한 곡선형 밴드셸(Bandshell)로, 중간에 최첨단 음향 시스템(LARES)을 정밀하게 배치했다.

그 결과 야외에서도 실내 콘서트홀과 같은 뛰어난 음향을 제공한다. 파빌리온은 미학적인 아름다움과 최적화된 음향 시스템, 그리고 조명까지 갖추어 공연을 최고로 이끈다. 금속 조각품 형상의 음악당은 공원을 빛내는 독보적인 존재이다. 공공미술 작품으로 관람만 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21세기에 건립된 시카고의 가장 화려한 건축물로 평가된다.

음악당 왼쪽으로 돌아서면 레이크 미시간과 연결되는 게리가 최초로 설계한 산책로가 있다. 시카고 미술관 3층에서 조망한 공원에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속 지붕이 보이고, 은빛 샛강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다. 이 광경이 공원에 흥미를 가지게 된 계기였다.

은빛 강줄기 같은 보행자 통로는 BP 브리지(BP Bridge)이다. 은색 스테인리스 강판 조각으로 덮인 외부 난간은 조각적인 효과를 연출한다. 멀리서 보면 마치 생선 비늘처럼 반짝인다. 이음매가 보이는 10,400개의 직사각형 금속판이 포개진 구조는 한국의 기와지붕을 엮은 모양과 닮았다. 다리는 공원 건설에 500만 달러를 기부한 BP plc의 이름에서 왔다. 총 길이 285m의 완만한 5% 경사면으로, 바닥은 나무로 되어 있다.

만일 다리가 보행용 직선 구조였다면 공사비의 10%면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리는 최초 공사비의 3배를 초과하였다. 유기적인 곡선의 다리는 다양한 각도에서 도심의 광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난간에 기대 하늘을 바라보고, 아래 도로를 내려다보기도 한다. 때로는 여러 배경을 두고 사진을 찍는 명소가 되기도 한다. 게리는 건축적 기능과 미학적 멋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 다리에서 지친 현대인을 위로하고 치유한다.

여기에 공원이 호흡하는 도심 속 휴식처인 거대한 녹지 공간 루리 가든(Lurie Garden)이 있다. 전문가의 손길로 늘 자연은 경이롭게 어우러진다. 이곳 역시 기금을 낸 앤 루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한편, 시카고가 공원의 명명권을 기부자의 돈에 팔았다는 부정적인 목소리도 있다.

밀레니엄 파크는 시카고가 심혈을 기울인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예술과 건축, 그리고 자연이 매력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공원은 시카고 방문객들의 필수 관광 코스가 됐다. 시카고 트리뷴은 “아무것도 없는 곳이 웅장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한때 삭막하고 황폐했던 곳이 이제는 시카고 방문객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반짝이는 문화적 장관의 본거지가 됐다.”고 전했다.

<사진 출처 – 개인 소장, Wikipedia>

이 아네스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