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클린턴, 게이츠, 서머스 등 정계·재계·학계 망라
거의 모두 “성범죄 몰랐다, 비위사실 없다” 주장 한목소리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미국 법무부가 최근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1953∼2019) 수사 관련 문건 수백만건을 공개하면서 사회 각계 유력인사들과 엡스타인 사이의 관계가 드러나고 있다.
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이른바 ‘엡스타인 파일’에서 엡스타인과의 친분관계가 드러난 정계, 금융계, 학계, 재계 등의 유력 인사들을 정리해 소개했다.
엡스타인과 교분이 있었던 유력 인사들은 거의 모두 불법행위나 비위를 저지른 적이 없고 엡스타인의 성범죄를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엡스타인과의 만남을 후회한다거나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일부는 2008년 엡스타인의 성매매 유죄 인정 후 교류를 단절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부는 교류를 유지해왔다.
엡스타인은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본인이 소유한 미국령 버진아일랜드의 ‘리틀세인트제임스’ 섬으로 유력인사들을 초대해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과 성관계를 맺도록 알선했다.
그는 2008년에 플로리다주 법원에서 검찰과의 사법거래를 통해 미성년자 연루 성매매 등 2건의 혐의를 인정하고 약 13개월간 복역한 후 출소했다.
그는 2019년에는 미성년자 성매매를 알선한 연방법 위반 혐의로 또 구속된 후 구치소에서 숨졌다. 그의 죽음은 자살로 판정됐으나, 사망 경위가 석연치 않아 타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엡스타인과 자주 어울렸다. 잡지 인터뷰에서 엡스타인의 여성 취향에 대해 “어린 편인” 여성을 좋아한다고 설명한 것으로 보도됐다. 미국 법무부가 공개한 문서에는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여러 여성과 트럼프가 함께 찍힌 사진과, 엡스타인의 50세 생일 때 만들어진 이른바 ‘엡스타인 생일책’에 트럼프가 서명한 것으로 보이는 ‘외설 편지’가 포함돼 있다. 엡스타인의 성매매 공범이었고 한때 연인이기도 했던 길레인 맥스웰이 2021년 재판을 받을 당시 제출된 증거와 증언에 따르면 트럼프는 엡스타인의 자가용 비행기를 여러 차례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엡스타인은 한 이메일에서 트럼프가 “그 여자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썼으나, 의미는 명확하지 않다. 트럼프는 엡스타인의 범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부인하며, 2000년대 초에 관계를 끊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엡스타인의 자가용 비행기를 탄 적이 없고 그의 생일책에 실린 ‘외설 편지’는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대통령 퇴임 후인 2000년대 초에 엡스타인과 어울리면서 그의 전용기를 몇 차례 이용했다. 법무부가 공개한 사진에는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여성들과 함께 수영하거나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담겼다. 클린턴은 비위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엡스타인과의 과거 관계를 후회한다고 말했다.
◇ 앤드루 마운트배튼-윈저(옛 이름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
엡스타인과 사교관계를 계속 유지했으며 이와 관련된 성매매 의혹을 계기로 최근 작위와 칭호를 삭탈당하고 폐서인돼 궁 밖으로 쫓겨났다. 미국 법무부의 형사사건 수사 협조 요청을 여러 차례 거부했다. 2022년에는 엡스타인의 성매매 알선 피해자 중 한 명이 제기했던 소송을 합의로 종결했으며 합의금 액수는 알려져 있지 않다. 법무부 자료에는 그가 여성들과 함께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이 포함돼 있다. 그 중 한 장은 그가 한 여성 위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다른 한 장은 여러 여성들의 무릎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이 나와 있다. 그는 비위 의혹을 전면 부인해왔으며 엡스타인과 친구 사이였던 점을 후회하지만 성범죄를 목격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2012년 엡스타인의 별장이 있는 섬을 방문해 오찬을 함께했으며 2015년 힐러리 클린턴 당시 대선 경선후보의 모금 행사에 엡스타인을 초대했다는 내용이 이메일로 드러났다. 이런 정황은 그가 2005년 이래 엡스타인과 “같은 방에 있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고 주장해온 바와는 어긋난다. 그는 2005년에 뉴욕의 옆집 이웃이던 엡스타인이 마사지 테이블을 보여주면서 성적으로 암시적 발언을 했다며 그 후로는 교류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2012년 엡스타인에게 섬에서 파티를 열 계획이 있는지 물었으나 방문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엡스타인은 “내 섬에서의 (남녀) 비율”이 머스크의 여성 동반자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고 답했으나 더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며칠 후에 머스크는 다른 섬에서 술자리를 가지자고 엡스타인을 초대했으나 실제로 만났는지는 불분명하다. 머스크는 엡스타인과 교류가 거의 없었으며 섬 방문이나 전용기 탑승 제안을 여러 차례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부 장관, 전 하버드대 총장
1998년부터 엡스타인의 전용 제트기를 몇 차례 탔으며, 하버드대 총장 재직시절에 엡스타인과 만나 경제 문제를 논의했다. 2019년까지도 교류 관계가 지속됐으며, 서머스가 연애 문제로 엡스타인의 조언을 구한 이메일도 나왔다. 비위 증거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작년 11월에 교류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가 공개되자 서머스는 하버드대, 오픈AI 등에서 맡아오던 직책들을 사임했다. 그는 당시 “깊은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나와 가장 가까운 이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공적 업무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후보자
한 홍보담당자가 이메일로 엡스타인에게 보내준 2010년의 한 크리스마스 모임 참석예정자 명단에 워시의 이름이 포함돼 있었다. 명단에는 방송인 겸 사업가 마사 스튜어트 등 유명인과 워시를 포함해 총 43명이 올라 있었다. 워시가 엡스타인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나 엡스타인이 이런 이메일을 받게 된 경위는 불분명하다. 워시는 현재까지 논평 요청에 답변하지 않았다.
◇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2002년에 길레인 맥스웰에게 이메일을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이 이메일은 엡스타인을 다룬 잡지 기사에 관한 것으로, “멋져 보인다”는 말이 들어 있다.
◇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엡스타인이 징역을 살고 출소한 후에도 자선 활동 확대를 논의하기 위해 여러 차례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엡스타인 파일에는 게이츠가 얼굴이 삭제된 여성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사진이 포함돼 있다. 게이츠는 엡스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선 활동 관련 논의만 했으며 그를 만난 것은 실수였다고 말했다.
◇ 제스 스테일리 전 바클리스 최고경영자
엡스타인이 주최한 모임들에 참가했으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엡스타인과 약 1천200건의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이 중 일부는 디즈니 캐릭터들과 젊은 여성들의 사진에 관한 내용이었다. 엡스타인과의 친분이 드러나면서 그를 비호했다는 의혹이 일어 2021년에 바클리스 CEO에서 물러났다.
◇ 피터 맨덜슨 전 영국 산업부 장관
엡스타인 파일에 5천번 이상 이름이 나오며, 영국 경찰의 비위 의혹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엡스타인을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부르면서 조기 석방을 신청하라고 조언한 이메일이 작년에 공개되면서 주미 영국 대사직에서 해임됐다.
◇ 건강 인플루언서 피터 어티아
장수 비결을 소개하는 인플루언서로 유명한 어티아의 이름은 엡스타인 파일에 1천700여회 등장한다. 그는 최근 X 게시물에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엡스타인의 뉴욕 자택에서 엡스타인을 7∼8차례 만났으나 불법 행위를 목격한 적도, 엡스타인이 미성년자로 보이는 인물과 동행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 ‘세기의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
2007년 미국 연방수사국(FBI) 수사관들이 카퍼필드와 엡스타인 사이에 “명확한 연결”이 있다고 보고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혐의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던 기록이 최근 공개됐다. 다만 내사는 2년여 후인 2010년 1월께 종결됐으며, 카퍼필드는 관련 사건으로 기소된 바가 없다. 엡스타인 파일의 작년 12월 공개분 중에는 하얀 목욕가운 차림의 길레인 맥스웰과 카퍼필드가 서로를 포옹하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분석에 따르면 이 사진은 엡스타인의 섬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이며 촬영 시기는 표시돼 있지 않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