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 인터뷰 갔다가 ‘현장 체포’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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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ICE-요원들이 맨하탄 이민법원에 출석한 이민자를 체포·연행하고 있다_로이터

미 시민권자 배우자들 이민국 인터뷰서 ‘수갑’
▶ 합법 절차 밟았는데도 불법
▶ 혐의 적용해 ‘파문’
▶ 가족분리·인권침해 논란

미 시민권자와 결혼한 외국인 배우자들이 영주권 신청을 위해 마지막 절차인 인터뷰에 참석했다가 연방 이민 당국에 의해 체포되는 사태가 전국에서 잇따르고 있어 파문이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영주권 인터뷰가 수갑으로 끝났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인터뷰를 위해 정부 기관을 스스로 방문한 이민자들이 면담이 끝나는 즉시 수갑이 채워져 연행되면서, 미국의 ‘가족 통합’ 이민 원칙이 사실상 무너지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시민권자의 배우자는 법률적으로 강력한 영주권 신청 자격을 갖고 있음에도, 과거의 비자 기간 초과 체류나 이전 추방 명령 등이 사유가 되어 연방 이민서비스국(USCIS) 인터뷰 현장에서 곧바로 이민세관단속국(ICE)의 구금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지난주 샌디에고 연방 청사에는 영주권 인터뷰를 위해 여러 부부가 모였다. 영국 출신 아내와 생후 4개월 아기를 데려온 스티븐 폴, 결혼 1주년을 앞둔 독일 출신 남편과 함께 온 오드리 헤스트마크, 멕시코 출신 배우자와 함께한 제이슨 코르데로 등 모두가 “새 삶을 시작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 직후 상황은 돌변했다. 무장한 ICE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외국인 배우자들에게 수갑을 채워 연행한 것이다.

스티븐 폴(33)은 “ICE 요원들은 울고 있는 아내에게서 아기를 빼앗아 밖으로 데려갔다. 그들이 ‘당신 아내를 체포하겠다’고 말했을 때 전혀 믿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 케이티 폴은 다른 수십 명과 함께 지역 구치소로 이송됐다. 스티븐은 아이를 돌보기 위해 셰리프 부서 업무까지 중단해야 했다.

샌디에고 이민 변호사 앤드루 니터는 “11월 중순 첫 사례가 발생한 이후 이 지역에서만 수십 명이 같은 방식으로 체포됐다”며 “대부분은 인터뷰가 단순 검토 절차라고 생각해 변호사도 동행하지 않았다”고 상황을 전했다.

ICE는 이들이 비자 기간을 초과해 체류한 ‘추방 대상’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하지만 부부들과 변호인단은 “서류 제출, 수수료 납부, 지문 확인, 건강검진까지 모두 통과했고 범죄 기록도 없는 이들이 왜 인터뷰에서 체포되느냐”고 반문한다. 한 변호사는 “25년 동안 이민 사건을 봤지만 이런 방식은 처음 본다”며 “정부가 절차를 따르라고 해놓고 그 절차를 ‘함정’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사례는 더 있다. 독일 출신 토마스 빌거는 인터뷰 마지막 질문에서 자신의 비자 초과 체류 사실을 솔직히 밝혔다가, 바로 복면을 쓴 ICE요원 세 명에게 체포됐다. 그의 아내 오드리 헤스트마크는 “우리는 규정을 모두 지켰다. 그런데 지금 남편은 고통받고 있고, 우리 가족 전체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제이슨 코르데로(26)의 아내 루드밀라는 체포 이후 극심한 불안과 공황 증세를 겪고 있다. 결혼반지와 귀걸이를 비닐봉투에 담아 남편에게 건네며 끌려가던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악몽”이라고 그는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제도적 신뢰 붕괴로 평가한다. 1986년 제정된 연방법은 비자 초과 체류 이력이 있더라도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했다면 영주권 신청이 가능하도록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USCIS 고위직으로 근무했던 더그 랜드는 “법률상 이들은 영주권 대상이 맞지만, 현장에서 임의적 단속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는 긴급 소송 등을 통해 석방되기도 한다. 케이티 폴의 경우 연방 법원이 개입한 뒤 정부가 영주권을 승인하며 석방했지만, 이는 극히 이례적인 사례다.

<노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