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단속 ‘일자리 붕괴’… 합법 체류자도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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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카마리요 농장 지역에서 연방 이민당국이 장갑차와 중무장 요원들을 동원해 이민 단속을 펼치는 모습. [로이터]

가주 농장 인력 40% 급감
▶ 수확 못해 농작물 썩어가
▶ 핵심산업 인력 공백 확산
▶ 곳곳에서 공사 지연 속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단속 강화가 불법체류자 추방에 그치지 않고 캘리포니아 전반의 고용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단속이 잇따르면서 농업·건설·식품가공 등 핵심 산업에서 인력 공백이 확산되고, 그 여파로 합법적 체류자와 시민권자 일자리까지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경제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불법체류 노동자 1명이 노동시장에서 이탈할 때마다 약 1.2개의 추가 일자리가 함께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 노동자들이 지역 상점에서 소비하고 임대료를 내며 지역 경제를 지탱해왔는데, 이들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연쇄적인 고용 축소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캘리포니아 센트럴 밸리 농업지대다. 일부 농가는 단속 이후 전체 인력의 최대 40%를 잃었다. 수확 인력이 부족해 딸기, 상추, 포도 등 농작물이 밭에서 썩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으며, 프레즈노 카운티의 한 토마토 농가는 수확하지 못한 200만 달러 상당의 작물을 폐기해야 했다.

ICE가 직접 나타나지 않아도 공포심은 이미 현장을 마비시키고 있다. 인근 지역 단속 소식만으로도 노동자의 20~30%가 출근을 중단한다는 것이다. 아직 추방되지 않은 농장 노동자들은 체포를 우려해 집에 머무르며, 그 빈자리는 메워지지 않고 있다.

건설업계도 심각하다. LA와 샌프란시스코 베이 전역에서 공사 지연이 속출하고 있으며, LA의 한 상업용 건물 공사는 인근 현장 단속 이후 목수 절반이 돌아오지 않아 골조 공사를 전면 중단했다. 농산물 선별·포장 공장 역시 인력 부족으로 교대 근무를 줄이거나 생산을 축소하고 있다.

농촌 소도시의 상권도 흔들린다. 새벽 농장 노동자들을 상대하던 식당들이 문을 닫고, 식료품점과 세탁소 매출도 급감했다. 중가주 살리나스의 한 세탁소 주인은 “고객이 3개월 만에 60% 줄었다”며 “사람들은 추방된 게 아니라 밖에 나오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임금 인상 시 미국 시민권자 대체 가능’ 주장도 현실과 거리가 멀다. 일부 농가는 시급 20달러 이상을 제시했지만 지원자가 거의 없었다. 고강도 노동과 불규칙한 근무시간, 폭염 속 작업이 외면받고 있기 때문이다.

연간 500억 달러 규모의 캘리포니아 농업은 성수기마다 약 40만 명의 노동력이 필요하다. 업계는 현재 추세가 지속될 경우 구조적 인력 부족으로 일부 농가가 영구적으로 규모를 축소하거나, 농사 포기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연방 단속이 경제를 파괴한다며 법적 대응과 ICE 협조 제한에 나서고 있지만, 갈등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민단속이 계속될수록 일자리 감소의 파급효과가 더 넓은 산업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노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