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로 이름·학교 시설물 등
▶ 가주 ‘차베스데이’ 기념일
▶ ‘농장 노동자의 날’ 변경
▶ “역사적 평가 다시 해야”
미국의 대표적 노동운동가 고 세자르 차베스를 둘러싼 성폭력 의혹(본보 19일자 보도)이 제기되면서, 그의 이름을 딴 거리·학교·공원·공휴일 등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가 캘리포니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19일 LA타임스가 보도했다.
뉴욕타임스 등 보도에 따르면 차베스가 1960~70년대 미성년자와 동료 여성 지도자에 대한 성학대를 저질렀다는 충격적인 의혹이 제기됐으며, 피해 당사자 일부는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 같은 폭로는 즉각 정치적·사회적 논쟁으로 번지며 지역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생일인 3월31일은 ‘세자르 차베스 데이’로 명명돼 지난 2001년부터 캘리포니아에서 주 공휴일로 기념해왔다. 애리조나, 유타, 텍사스, 콜로라도, 오리건, 미네소타에서도 기념일로 지정돼 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공휴일 유지 여부를 포함한 대응 방안을 긴급 검토 중이다. 개빈 뉴섬 주지사는 “필요하다면 주의회와 함께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시급성을 인정했다.
정치권에서는 차베스 개인에 대한 기념은 축소하되, 농장 노동자 운동 자체는 계속 기려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일부 주의원들은 공휴일 명칭을 ‘농장 노동자의 날(Farmworkers Day)’로 변경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며, LA카운티 정부도 같은 방향의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LA시 정부 역시 향후 기념 행사와 공공시설 명칭 문제를 놓고 논의에 착수했다. LA 다운타운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도 있으며, 같은 이름을 쓰는 학교도 여러 곳 있다. 캐런 배스 LA 시장은 “차베스의 범죄 의혹이 노동자들의 용기와 권리 투쟁의 의미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여성에게 가해진 역사적 구조적 피해를 바로잡기 위한 지속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커뮤니티에서는 보다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LA의 비영리단체 연합 ‘캘리포니아 라이징’은 LA 다운타운 지역의 도로에 붙은 세자르 차베스 애비뉴 명칭을 ‘돌로레스 우에르타 애비뉴’로 변경하자는 온라인 청원을 시작했으며, 시의회 일부 의원들은 “차베스 이름이 붙은 모든 공공 장소의 명칭 변경”을 촉구했다.
프레즈노와 롱비치, 새크라멘토 등 각 도시에서도 거리 이름과 공공시설 명칭 변경 논의가 잇따르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기존 계획됐던 차베스 기념사업이 중단됐으며, 대학 캠퍼스 내 동상은 가림막으로 덮이는 등 상징물 철거 절차도 시작됐다.
교육계 역시 대응에 나섰다. LA 통합교육구(LAUSD)는 “교육 내용이 특정 인물이 아닌 노동운동 전체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도록 재검토 중”이라고 밝혔으며, UC 데이비스는 예정된 학술행사에서 차베스의 이름을 삭제했다.
이번 사태는 오랫동안 라티노 공동체의 상징적 인물로 추앙받아온 차베스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프레즈노 시의원 미겔 아리아스는 “공공시설 명칭은 공동체의 최고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며 “현재 드러난 사실로는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만 일부에서는 차베스의 공로와 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분리해 평가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농장 노동자 출신인 아리아스 의원은 “차베스는 우리 공동체의 영웅이었지만, 이제는 고통받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